햇빛이 말을 걸다
- 권대웅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플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 시 이해하기 ]
권대웅(1962~ ) 시인은 달 그림을 그리고, 달에 대한 시를 쓰는 '달 시’로 잘 알려진 시인입니다. 이 시에서는 '햇빛'을 노래하고 있네요. 해와 달, 생각만 해도 따뜻해지는 단어들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봄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나요?
이 시에서는 길을 걷는데 이마를 툭 건드린 햇빛 때문에 알았다고 합니다.
따사로운 기운을 느끼지 못한 채 긴 겨울을 지내다가, 어느 순간 이마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져 고개를들고 보니 봄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그렇게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오고 있다는 겁니다. 맞아요. 햇빛은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말을 걸고 있죠.
"봄이야."라고 말을 거는 햇빛의 말에 귀 기울인 덕분에 나무들은 한잎을 피우고, 잠든 꽃잎은 눈꺼풀을 깨우고, 땅속에서는 새싹이 솟아오릅니다.
- <일상에서 세상으로> 중에서
'마음챙김의 글 > 시 한편의 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꽃 시모음, 연꽃에 관한 시모음 ‘연잎 앞에서’ 외 (0) | 2024.06.06 |
---|---|
[인생시]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0) | 2024.03.16 |
[인생시] 반칠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0) | 2024.03.10 |
[3월의 시] 나태주 시인 '3월에 내리는 눈' (0) | 2024.03.08 |
정현종 인생시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0) | 2024.02.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