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어울리는 시 모음
가을이 아름다운 건
- 이해인 수녀
가을이 아름다운 건
구절초, 마타리, 쑥부쟁이꽃으로
피었기 때문이다.
그리운 이름이
그리운 얼굴이
봄 여름 헤매던 연서들이
가난한 가슴에 닿아
열매로 익어갈 때
몇몇은 하마 낙엽이 되었으리라.
온종일 망설이던 수화기를 들면
긴 신호음으로 달려온 그대를
보내듯 끊었던 애잔함
뒹구는 낙엽이여...
아, 가슴의 현이란 현 모두 열어
귀뚜리의 선율로 울어도 좋을
가을이 진정 아름다운 건
눈물 가득 고여 오는
그대가 있기 때문이리
가을볕
- 정진아
골목길 걷는 동안
내 등에 업힌 가을볕
동생 숨결처럼
따뜻하게 느껴지고
아랫목 할머니 품처럼
시린 어깨 감싸 주고.
가을 들녘에 서서
- 홍해리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가을비
- 이정록
단 한 번의
빗나감도 없이
오직 정타뿐이어서
벌레 한 마리
다치지 않는
저 참깨 터는 소리
불길 헤집던 부지깽이가
나이테도 없는 빈 대공을
어루는 소리
골다공증의 뼈마디와
곳간 열어젖힌 꼬투리가
긴 숨 내쉬는 소리
비운 것들의
복주머니 속으로만
저 초가을 빗소리
가을하늘의 화두
-정연복
파란 가을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그냥
마음이 편안하다.
몸은 비록
지상에 매여 있어도
내 마음 내 영혼은
문득 한 점 구름이 된다.
삶은 흐르는 것
구름같이 흘러 흘러서 가는 것
가을하늘이 툭
벼락같이 던지는 화두다.
가을 편지
- 나호열
당신의 뜨락에
이름모를 풀꽃 찾아왔는지요
눈길 이슥한 먼발치에서
촛불 떨어지듯 그렇게 당신을 바라보는 꽃
어느 날 당신이 뜨락에 내려오시면
이미 가을은 깊어
당신은 편지를 읽으시겠는지요
머무를 수 없는 바람이 보낸
당신을 맴도는 소리죽인 발자국과
까만 눈동자 같은 씨앗들이
눈물로 가만가만 환해지겠는지요
뭐라고 하던가요
작은 씨앗들은
그냥 당신의 가슴에 묻어두세요
상처는 웃는다 라고
기억해 주세요
당신의 뜨락에
또 얼마마한 적막이 가득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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