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가을시 모음
가을 안부
- 나태주
골목길이 점점 환해지고
넓게 보인다
도시의 건물과 건물 사이가
점점 성글어진다
바람 탓일까
햇빛 탓일까
아니면 사람 탓일까
그래도 섭섭해하지 말자
우리는 오래된 벗
너 거기서 잘 있거라
나도 여기 잘 있단다
가을이 와
- 나태주
가을이 와 나뭇잎 떨어지면
나무 아래 나는
낙엽 부자
가을이 와 먹구름 몰리면
하늘 아래 나는
구름 부자
가을이 와 찬바람 불어오면
빈 들판에 나는
바람 부자
부러울 것 없네
가진 것 없어도
가난할 것 없네.
가을 여행
- 나태주
멀리멀리 갔지 뭐냐
그곳에서 꽃을
여러 송이나 만났지 뭐냐
맑은 샘물도 보았지 뭐냐
그렇다면 말이다
혼자서 먼 길 외롭게
힘들게 찾아간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지 않으냐.
가을 햇살 앞에
- 나태주
고개를 숙여라
더욱 고개를 숙여라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 있다면
그것부터 놓아라.
스스로 편안해져라
너 자신을 쉬게 하고
위로하고 기꺼이 용서하라.
지난 여름은
또다시 싸움판
힘든 날들이었다.
이제 방안 깊숙이
밀고 들어오는 햇살
우리 마음도 따라서
고요해질 때
가을은, 가을 햇살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부드러움을 요구한다.
가을 햇살 아래
- 나태주
가을 햇살은
겸손하고 부드럽다
부릅뜬 눈을 거두어
다감한 눈으로
사람을 보기 시작한다
괜찮아 괜찮아
올해도 수고 많았지
조금씩 좋아질 거야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고
사람의 어깨를 쓸어준다
가을 햇살은 우리에게
부드러움과 착함을 가르친다
올해도 가을
내가 살아서 다시
너를 만남이 행운이다.
만추
- 나태주
돌아보아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사랑했던 날들
좋아했던 날들
웃으며 좋은 말 나누었던 날들만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
등 뒤에서 펄럭!
또 하나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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