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를 통해 무기력, 현실 외면한 중국을 풍자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1911년 일어난 신해혁명을 전후로 한 농촌을 배경으로, 이름도 출신지도 불확실한 날품팔이꾼 '아Q'의 이야기를 정전(正傳:바르게 전하여 오는 전기)의 형식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 작가에 대하여
루쉰(1881~1936)
중국 문학가 겸 사상가 루쉰은 1881년 저우씨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난징으로 가서 광무철로학당을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의학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우연히 본 러일전쟁 시사영화에서 한 중국인이 스파이 혐의로 일본군에 의해 총살되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는 중국군중을 본 뒤, 민중의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일보다 민족적 자각을 시키는 일, 정신 개혁이 급선무라 여기고 문학으로 전향한다.
그러나 루쉰은 도쿄에서 잡지 ‘신생’을 발간하려는 계획이 실패하면서 좌절에 빠진다. 글쓰기를 권하는 친구에게 루쉰은 "가령 쇠로 된 방이 있는데 사방이 막혀 죽을 판이라면 잠자는 그들을 깨워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중국의 현 상황을 우회하여 반문한다. 그때 친구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몇 사람이라도 깨어 있다면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있다"고. 이 말을 듣고 루쉰은 마음을 바꿔 중국의 미래를 위해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루쉰은 1921년에 발표한 《아Q정전》에서 중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정신승리법의 우매성과 약점을 냉철하게 풍자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중국 사회의 의식 개조를 목적으로 수많은 글을 발표한 루쉰은 1936년 폐결핵이 악화되어 56세로 사망했다.
급변하는 근대화 속에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중국민족을 문학을 통해 치료하고자 한 루쉰. 그의 작품 대부분은 봉건적 습속이 혼재된 반식민지 상태라는 어두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변혁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이었다.
◎ 《아Q정전》 배경지식
《아Q정전》을 이해하려면 중국의 시대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한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는 거듭된 실패에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 영웅주의에 빠져 있었다. 1900년 외세배척운동인 의화단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 청나라는 힘을 잃고 서양 세력이 하자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가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의사 생활을 하던 쑨원은 무너져가는 청나라를 보며 나라를 구하는 혁명 운동에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러 혁명 조직을 하나로 묶는 데 평생에 걸쳐 온힘을 바치며 혁명 운동을 이끌었다. 그래서 그를 ‘중국 혁명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쑨원은 삼민주의를 내걸고, 여러 차례 봉기를 시도했다.
1911년 10월 10일, 청나라가 철도를 외국의 손에 넘기려하자, 청나라 정부에 화가 난 군인들이 혁명파와 손잡고 우창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그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져갔고, 그 결과 중국의 대부분이 청 왕조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으며,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하는 중화민국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신해혁명'이다.
신해혁명으로 2000년 동안 존재했던 황제가 없어지고, 공화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혁명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난징에 도읍을 정하고 남부만을 차지했을 뿐, 베이징에는 여전히 청 정부가 있었다. 청 정부는 혁명파를 없애기 위해 위안스카이에게 모든 권력을 넘겨준 상태였다.
쑨원은 위안스카이에게 공화정을 세우는 데 찬성만 한다면 대총통의 자리를 내어주기로 하고 협력을 제안했다. 권력에 욕심이 난 위안스카이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의 도움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는 권력을 잡자 공화정을 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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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Q정전》 줄거리
주인공 '아Q(阿Q)'는 이름도 성도 없고, 출신지나 이전 행적에 관해서도 전혀 알 수가 없는 무지렁이다. ‘아(阿)’는 친근감을 주기 위해 사람의 성이나 이름 앞에 붙는 접두어이고, ‘Q’는 청나라 말기 중국인들의 변발한 머리 모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아Q는 집이 없어 웨이좡 마을에 있는 사당에서 기거한다. 그는 딱히 직업도 없어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간다. 일이 없을 때는 노름판과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차림새도 보잘 것 없다. 그럼에도 자존심만큼은 무척 강해서 “나도 옛날에는 너보다 훨씬 잘 나갔어. 네가 뭐 대단하다구!”라며 웬만한 사람은 다 무시한다.
다만 변발한 머리에 또렷하게 박힌 나두창((머리에 나는 부스럼) 자국을 부끄러워해서 조금만 놀려도 노발대발한다. 그래봐야 두들겨 맞기 일쑤지만. 수모를 당해도 아Q는 “자식에게 맞은 셈 치자. 요즘 세상은 정말 개판이야”라며 오히려 의기양양하다. 아Q는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정신승리법’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자신을 위로하며 하루하루 의미없이 산다.
“아Q는 건달에게 두들겨 맞고는 잠시 서서 생각한다. ‘아들놈한테 두들겨 맞은 걸로 치지 뭐. 요즘 세상은 돼먹지가 않았어’. 그리고는 자기만의 ‘정신승리법’을 동원해 이내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킨 뒤 마치 남을 때린 것처럼 흡족해하며 승리의 발걸음을 옮겼다.”
이처럼 아Q의 정신승리법은 자신에게 압박을 가하는 상대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자신을 두거나, 그 반대로 자기를 상대보다 낮은 위치에 두고 자기를 비하하는 것이었다.
아Q는 거지 왕 털보를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여 조롱하다가 변발을 움켜잡혀 담장에 머리를 찧는 굴욕을 당한다. 또 아Q는 첸 대감네 아들이 서양식 학교와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변발을 잘라버리자 ‘가짜 양놈’이라고 욕하여 화가 난 첸 대감네 아들에게 지팡이로 두들겨 맞는다.
아Q는 그 분풀이를 젊은 비구니에게 했다. 그는 평소에 비구니를 보기만 하면 욕을 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젊은 비구니를 보자, 조롱하며 그녀의 볼을 꼬집는다. 그 순간 아Q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Q가 여자를 안 것이다.
결국 이러한 아Q의 변화는 자오 나리의 집에 쌀을 찧으러 갔을 때 일어나고 말았다. 그는 자오 나리의 집에서 일하는 젊은 과부 우마에게 수작을 걸다가 자오 나리에게 사정없이 얻어맞고 돈과 이불을 지불해야 했다.
우마와의 사건이 있은 후부터 마을 여자들은 아Q만 보아도 도망갔고, 남자들은 아Q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외상술도 주지 않았다. 전에는 친하던 사당지기도 아Q를 보면 언짢아했고, 그에게 일을 주고자 하는 사람도 없었다.
더 이상 날품팔이를 하지 못하게 되자 아Q는 배고파서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몇 달 뒤 아Q는 번듯한 모습으로 웨이좡 마을에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괜찮은 물건을 판매하는 아Q에게 호감을 갖지만 곧 도둑패거리의 심부름꾼이라는 게 드러나자 다시 무시한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던 해 9월, 위장한 파이 어른의 배가 자오 나리의 선착장에 닿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혁명당을 피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아Q는 마을사람들이 혁명당에 놀라 떨고 있는 것을 보고, 혁명당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Q는 처음엔 혁명당은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증오했지만, 거인 나리가 혁명당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혁명당이 나쁘고 가증스러운 것들을 혼내주는 것이라 생각해 자신도 혁명에 가담하려고 한다.
아Q가 혁명당에 가입하기 위해 첸가의 아들을 찾아간 날 밤에 자오 나리의 집이 습격을 당한다. 아Q는 자신을 내쫓은 자오 나리에 대해서 감정이 있었고, 마을사람들도 자오 나리의 집이 습격당한 것을 은근히 속으로는 기뻐했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두려움도 느꼈다.
어느 날 갑자기 아Q가 체포되었는데 누가 누명을 씌웠는지 몰라도 아Q가 자오 나리 집을 습격한 장본인이라는 것이었다. 심문하던 대장이 손에 붓을 쥐어주자 글을 모른다는 아Q의 말에 서명하는 대신에 동그라미를 그리게 한다.
아Q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서 굶주린 이리의 눈초리를 떠올리며 자신의 영혼이 물어뜯기는 것 같은 무서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들의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형을 받았다.
◎ 작품 해설
1. 아Q의 정신승리법에 대해서
'정신승리법'이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머릿속에 그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합리화하여 만족감을 얻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위기와 불안, 실패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겨 나가려 하지 않고 정신 속으로 달아나 그 속에서 위안을 얻은 다음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심리를 가리킨다.
작가는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항상 자기합리화로 현실을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아Q의 이른바 '정신승리법'을,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낡은 지식인과 중국인들에게서 발견하고 이를 풍자한 것이다.
서구 열강의 막강한 국력과 과학기술에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정신적·문화적으로는 중국이 한 수 위라는 위안을 삼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현실 모순에 당당하게 저항하지 못하고, 지난날의 영광에 젖어 무기력하기 짝이 없던 데 대한 힐책이었다.
2. 아Q의 노예근성과 영웅주의
작가가 당시 중국인의 성향과 중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버무려 넣은 ‘아Q’라는 인물은 노예근성(남이 시키는 대로 하거나 주체성 없이 남의 눈치만 보는 성질)에 젖은 무기력함 자체였다. 또한 매사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영웅주의에 빠져 있었다.
“혁명도 좋구나. 가증스러운 놈들, 모조리 엎어버려야 한다.” 아Q는 강도들이 약탈하는 것을 혁명사업으로 잘못 알고 그 근처에서 얼쩡거리다가 영문도 모른 채 강도들의 공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다. 이러한 아Q의 모습은 뚜렷한 이념과 철학, 주관도 없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인간 유형을 상징한다.
또한 아Q는 강자에게 약하면서 약자에게는 모질게 굴었다. 처지가 비슷한 날품팔이꾼과 사투를 벌이고, 약해 보이는 젊은 비구니를 희롱한다. 자신이 받은 차별과 억압을 자신보다 열등한 인물에게 전가하는 중국인의 국민성을 작가는 아Q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3. 민중과 괴리된 혁명(신해혁명)
아Q가 즉흥적으로 혁명당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나, 혁명을 변발의 자유나 가슴에 단 은복숭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통해 당시 중국민중이 신해혁명을 매우 피상적이고 형식적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혁명이 일어나도 지배층은 변하지 않고 이름만 바뀔 뿐이고, 심지어는 뭐가 어떻게 바뀐 건지도 체감하지 못했다.
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할 민중들은 혁명이 무엇인지 이해조차 못했기 때문에 그저 가진 게 많은 사람은 빼앗길까봐 두려워했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심한 착취와 지배를 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아Q 역시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것이다. 작가는 아Q를 통해 신해혁명 이후 중국인이 겪어야했던 당혹스러움과 허탈감을 잘 보여준다.
4. 아Q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아Q의 죽음을 대하는 마을사람들의 태도를 살펴보자.
"총살 당한 것은 아Q가 나쁘다는 증거야. 나쁘지 않았다면 왜 총살을 당했겠어?"라는 마을사람들의 말은 그들이 지배자의 노예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아Q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의심이나 궁금증도 없이 하나의 구경거리로 생각할 뿐이다. 당시 중국인의 우매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아Q나 마을사람들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능력이 없을 때 누구나 쉽게 노예근성에 빠지게 된다. 작가는 아Q의 죽음을 구경거리로밖에 보지 않는 군중들에 대한 노여움과 함께 아Q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한마디 하지 못하는 이런 어리석은 모습이 더 이상 자국민에게 없기를 바라며, 아Q를 총살시켜버림으로서 당시 중국인들의 어리석고 못난 모습을 소설에서나마 제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루쉰이 《아Q정전》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중국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결국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외침이었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일어서라는 절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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