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의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
윤리적 책임감 없는 과학기술 발전은 ‘재앙’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 달라고?
- <프랑켄슈타인> 앞머리에 인용된 밀턴의 '실낙원' 한 구절
❒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소설보다는 영화로 더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1818년 출간된 당시에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31년에 할리우드에서 처음 흑백영화로 만들어지며 큰 인기를 얻었다.
영화 속에서 거대한 몸집과 커다란 사각형의 얼굴에 두드러진 이마, 나사가 박혀 있는 목, 덕지덕지 꿰맨 듯한 피부 등 흉측한 모습의 프랑켄슈타인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로 프랑켄슈타인은 영화나 연극, 드라마, 만화, 뮤지컬 등으로 계속 변형되고 재생산되면서 괴물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나 원작 소설을 읽어 보면 프랑켄슈타인의 정체는 괴물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생명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했던, 그 결과로 괴물을 탄생시키고 후회와 두려움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과학자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소설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만든 생물체를 '악마'라고 부르거나, '괴물' 또는 '피조물(被造物·만들어진 생물체)'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The creature'라고 부른다. 그런데 영화나 게임에서 이 괴물의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번 재창작되면서 사실이 다르게 전해진 결과인 것이다.
❒ <프랑켄슈타인> 탄생 비화
<프랑켄슈타인>에는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 소설의 작가는 당시 19세밖에 되지 않았던 메리 셸리(1797~1851)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두 번째 부인이기도 한데, 메리와 처음 만났을 때 퍼시 셸리는 유부남이었음에도 17세의 메리와 사랑에 빠졌고 급기야는 둘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기에 이른다.
그들은 1816년 여름에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 바이런과 바이런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와 함께 스위스 제네바의 호수 근처에서 여름을 나게 된다.
며칠 동안 폭풍우가 계속되자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했던 이들은 독일의 공포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을 돌려 읽으면서 여름휴가 동안 자신들도 한 편씩 공포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시인이었던 바이런과 퍼시 셸리가 소설을 쓰는 것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손을 뗀 반면에, 폴리도리는 흡혈귀 이야기인 ‘뱀파이어’를, 메리 셸리는 인간을 창조하고자 신의 영역을 넘보았던 과학자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을 완성시킨다.
❒ <프랑켄슈타인> 줄거리
<프랑켄슈타인>의 작품 속 화자는 모두 세 명이다.
첫 번째는 북극을 향해 항해 중이던 월턴 선장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만든 괴물의 뒤를 쫓아 북극까지 오게 된 프랑켄슈타인 박사, 세 번째는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괴물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각각의 이야기가 모여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되는데 월턴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 안에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다시 그 안에 괴물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이중으로 된 액자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북극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항해하다 빙산에 갇혀버린 월턴 선장은 자신의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와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몇 달간 계속된 지리멸렬한 항해에 선원들 모두 지치고 피곤해할 즈음 운명처럼 만난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월턴은 ‘경이로우리만큼 존경과 연민을 한꺼번에 자아내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그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최대한 육성에 가깝게 기록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나고 자란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화학과 물리학, 생물학 등을 두루 배우며 자신의 손으로 생명체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시체를 찾아다니며 조각조각을 모아 어느 비 오는 날 새벽, 마침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신체 부위의 미세한 부분까지 만들다 보면 작업 속도가 너무 느려지기 때문에 나는 처음 의도와는 달리 거대한 체격을 지닌 존재를 만들기로 했다. 즉 키를 약 2m40㎝로 정하고, 그것에 비례해서 모든 부위를 크게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결단을 내리고 몇 달에 걸쳐 성공적으로 재료들을 구하고 배열하는 일을 마친 후에 나는 드디어 생명 창조의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만든 생명체는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다 끝나고 나서 보니 ‘아름다운 꿈은 사라지고 숨 막히는 공포와 혐오만이 심장을 가득 채웠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흉물스러움을 견디지 못한 그는 그 길로 도망을 치고 만다.
자신을 만든 사람마저 도망치게 만드는 추악한 외모의 괴물. 괴물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사랑을 주고받길 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외모만 봐도 기절하거나 무기를 들고 달려들자, 괴물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숨어 살다가 한 단란한 가족을 지켜보게 된다.
괴물은 그 가족과 어울려 살기를 소망하며 몰래 언어를 배우고 책을 읽었지만, 괴물 모습을 본 그들은 죽도록 때린 뒤 멀리 도망쳐 버렸다. 이제 괴물에겐 분노와 복수의 감정만 남았다.
"저주받을 창조자! 왜 당신은 스스로도 역겨워 고개를 돌릴 만큼 소름끼치는 괴물을 만들었는가? 신은 자기 형상을 본떠 인간을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만들었건만, 내 모습은 추악한 당신의 모습이구나. (중략) 나는 외톨이고 증오의 대상이로다."
2년의 세월이 흘러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가족 여행을 떠난 길에서 괴물과 마주치게 된다. 괴물은 그동안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들려주며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프랑켄슈타인에게 책임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여생을 보낼 여자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외롭고 불행한 나를 거부하지 않을, 나와 똑같은 결함을 지닌 반려자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의 요구에 다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만든 여자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만다. 자신이 또다시 생명체를 만들었을 때 더 큰 악행을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작업을 지켜보던 괴물은 분노하여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예비 신부를 살해한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쫓아 북극까지 갔다가 탐험대의 배 안에서 비참하게 죽는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죽음을 확인한 뒤 월턴 선장에게 스스로 몸을 불태우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 <프랑켄슈타인> 작품해설
20세기에 들어 이 작품이 더욱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경이롭다고 할 만큼 과학이 발전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작품 속에서 괴물은 인간의 여러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인간의 욕망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생명의 비밀을 벗겨내겠다는 욕망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사실 그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공헌하겠다는 그럴 듯한 목표가 있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끔찍한 결과 앞에서 공포와 충격에 빠진 나머지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모습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유전자 조작과 세포 복제에 의한 생명의 변형과 창조가 가능해진 오늘날, 과연 이것이 인류에게 축복인지, 재앙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과학적 성과물에 대한 과학자의 성찰과 책임감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인류가 직면할 수 있는 재앙의 크기를 이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괴물은 뛰어난 지능을 바탕으로 혼자 글을 깨치고 사유를 넓혀 가면서 자신이 아무리 선한 의지를 지녔더라도 흉측한 몰골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 세계로 편입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절망한다. 그래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말한다.
“감히 생명을 갖고 놀았단 말인가? 나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 다하라!”
이는 비록 200여 년 전에 거의 무명에 가까운 한 작가에 의해 쓰인 작품 속 한 구절이지만 현대에 와서 더 유효한, 아무도 윤리적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과학 발전이나 기술 발전에 대한 섬뜩한 경고라 할 만하다.
- 서울신문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발췌,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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