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미국 상징주의 문학의 최고 걸작
스타벅스(Starbucks)의 상호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1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모비딕>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차분한 인물이다. 스타벅스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로 상호를 지은 것은 아마 커피 한 잔이 주는 차분함을 상징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미국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좋아하는 책이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이다. 국내에서는 한 동안 <백경>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던 이 작품은 미국 상징주의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 줄거리
이 소설은 삶에 염증을 느끼고 신비스러운 고래를 만나기 위해 포경선에 오르는 이스마엘이라는 청년의 회상으로 구성돼 있다.
항구도시 뉴베드퍼드에 도착한 이스마엘은 여인숙에서 기괴한 문신을 한 남태평양 출신 원주민 작살잡이 퀴퀘크를 만난다. 이스마엘은 문명의 위선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소박함과 위엄을 지닌 이 남자에게서 진한 인간애를 느끼고 그와 함께 포경선 피쿼드호에 승선한다.
승선하기 전 “바다에 도전하는 자는 영혼을 잃게 될 것”이라는 메플 신부의 경고를 비롯해 불길한 징조가 여럿 있었지만 둘은 무시한 채 배에 오른다.
한쪽 다리에 고래뼈로 만든 의족을 한 선장 에이허브는 오로지 자신의 한쪽 다리를 가져간 거대한 흰 고래 ‘모비딕(Moby Dick)’을 찾아 복수하기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배에는 스타벅이라는 일등 항해사가 있는데 그는 에이허브와 대립되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 앞에 경이롭고 신비스러운 괴물 모비딕이 나타난다. 등에는 무수한 작살이 꽂힌 채 욕망과 분노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조롱하듯 모비딕은 바다의 제왕답게 쉽게 정복되지 않는다.
스타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이허브와 모비딕의 대결은 사흘 낮밤 동안 처절하게 지속된다. 첫째 날과 둘째 날 보트 여러 대가 파괴되고 선원들이 죽어갔지만 에이허브의 분노와 집착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되지 않는 흰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결국 사흘째 되던 날 에이허브는 마지막 남은 보트를 타고 나가 모비딕에게 작살을 명중시키지만 작살 줄이 목에 감겨 고래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피쿼드호는 침몰하고 소설의 화자인 이스마엘 혼자만 바다를 표류하다가 살아남는다.
❐ 작품 해설
소설 <모비딕>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성서에서 따온 이름이 많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스마엘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이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신은 들으셨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선장 ‘에이허브(Ahab)’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폭군의 이름이다. 구약에는 ‘아합’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에이허브’는 아합의 영어식 발음이다. 구약에서 아합 왕은 악행을 일삼고 우상숭배에 빠져 이스라엘을 혼란에 빠뜨렸던 왕이다.
또 소설에서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죽을 것”이라는 예언한 남자의 이름은 일라이저(Elijah)다. 히브리식 발음으로는 엘리야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박해받았던 구약성서 최대의 예언자다. 구약시대 최고의 예언자를 등장시킴으로써 소설의 비극적인 결말을 미리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 <모비딕>은 인간의 어리석은 본성을 준엄하게 비판하는 소설이다. 자연에 무모하게 도전했다 자멸하는 인간을 통해 오만의 최후를 말해준다.
간혹 고래 모비딕을 악의 상징으로 분석하는 문학 이론서도 있다. 이들 이론서들은 <모비딕>의 주제가 ‘악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오독에서 온 잘못된 분석이다.
고래 모비딕은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대로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동을 하고 먹이를 구하고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때로는 그들과 맞서 싸우는 섭리대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모디딕>은 인간의 오만함을 비판한 소설이 맞다.
❐ 작가에 대하여
허먼 멜빌(1819~1891)
181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허먼 멜빌은 『주홍 글씨』를 지은 너대니얼 호손,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지은 마크 트웨인과 더불어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손꼽히는 작가이다.
허먼 멜빌은 1841년 포경선 선원으로 항해를 떠났으나 선장의 폭압과 격무 탓에 이듬해 탈주해 타히티섬을 비롯한 폴리네시아의 여러 섬에서 생활하였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장편소설 『타이피』를 집필했다. 1851년엔 장편소설 을 출간했다.
죽는 날까지 무명이었던 허먼 멜빌이 빛을 본 건 그가 사망한 지 30년쯤 지나 레이먼드 위버라는 유명한 평론가가 '멜빌 연구'라는 평론집을 내면서부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피에르, 혹은 모호함』, 『빌리 버드』, 『필경사 바틀비』 등이 있다.
- 출처 : 매일경제 [허연의 인문학산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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