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바다에 대한 시 모음
바다가 쉴 때는
- 이해인
여름에 왔던
많은 사람들로
몸살을 앓던 바다가
지금은 조용히 누워
혼자서 쉬고 있다
흰 모래밭에
나도 오래 누워
쉬고 싶은 바닷가
노을 한 자락 끌어 내려
저고리를 만들고
바다 한 자락 끌어 올려
치마를 만들면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내가 혼자인 것이
외롭지 않다
바다 일기
- 이해인
늘 푸르게 살라 한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내 굽은 마음을 곧게
흰 모래를 밟으며
내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바위를 바라보며
내 약한 마음을 든든하게
그리고
파도처럼 출렁이는 마음
갈매기처럼 춤추는 마음
늘 기쁘게 살라 한다
바다새
- 이해인
이 땅의 어느 곳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수 없어
바다로 온 거야
너무 많은 것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예까지 온 거야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온 거야
아 어떻게 설명할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이 작은 가슴의 불길
물 위에 앉아
조용히 식히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미역처럼 싱싱한 슬픔
파도에 씻으며 살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바닷가에서
- 이해인
오늘은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철석이는 파도 소리가
한번은 하느님의 통곡으로
한번은 당신의 울음으로 들렸습니다
삶이 피곤하고
기댈 데가 없는 섬이라고
우리가 한번씩 푸념할 적 마다
쓸쓸함의 해초도
더 깊이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며 하는 말
감당 못할 열정으로
삶을 끌어 안아 보십시오
썰물이 나가면서 하는 말
놓아버릴 욕심들은
미루지 말고 버리십시오
바다가 모래 위에 엎질러 놓은
많은 말을 다 전할순 없어도
마음에 출렁이는 푸른 그리움은
당신께 선물로 드릴게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슬픔이 없는 바닷가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로
춤추는 물새로 만나는 꿈을 꾸며
큰 바다를 번쩍 들고 왔습니다
파도의 말
- 이해인
울고 싶어도
못 우는 너를 위해
내가 대신 울어줄게
마음을 놓고 울어줄게
오랜 나날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받은
모든 기억들
행복했던 순간들
푸르게 푸르게
내가 대신 노래해줄게
일상이 메마르고
무디어질 땐
새로움의 포말로
무작정 달려올게
'마음챙김의 글 > 시 한편의 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시 모음] 이해인 수녀 ‘여름이 오면’ 외 (0) | 2022.06.18 |
---|---|
나태주 시인의 ‘여행시’ 모음 (0) | 2022.06.17 |
[바다 시] 문병란 ‘바다가 내게’ (0) | 2022.06.12 |
[바다 시] 나태주 ‘바다에서 오는 버스’ 외 (0) | 2022.06.11 |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나태주 시인 ‘뒷모습’ 외 (0) | 2022.06.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