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 박태원이 쓴 자전적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줄거리와 작품해설
작가 소개
소설가 박태원(1909-1987)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일본 호세이 대학을 중퇴한 후 귀국해 문단에 데뷔하였다. 활동 초기에는 주로 시를 썼으나, 1930년대 들어서며 소설을 집중적으로 창작했다.
이태준, 이효석, 이무영 등과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했고, 이상(李箱·1910~1937)과는 단짝 친구로 어울렸다.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며, 이후 1950년경 월북해 1970~80년대까지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한 박태원의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풍경>, <성탄제> 등이 있다.
작품 해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박태원의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미혼의 소설가 구보가 어느 날 집을 나서서 서울 거리를 배회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구보'는 박태원의 필명이기도 한데, 소설에서 일제 강점기의 무기력한 지식인을 상징하고 있다.
구보는 '전차 안 → 다방 → 경성역 대합실 → 다방 → 거리 → 술집'을 돌아다니며 도시의 우울함과 속물주의, 물질에 집착하는 세태를 발견하고 이를 비판한다.
구보가 경성 거리를 방황하는 것은 당대의 세태를 드러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근대적 삶의 방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도시에서 '구보' 자신이 '고독에서 벗어나고 행복에 도달할 방법은 없겠는가' 모색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줄거리
마땅한 직업과 아내가 없는 스물여섯 살 구보는 어머니에게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거리였다.
낮에 한 번 집을 나서면 밤늦게나 되어서야 돌아왔고 늙고 쇠약한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다가 선잠을 자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아들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편, 집을 나선 구보는 천변 길을 따라 광교 쪽으로 향한다. 종로 네거리에 다다라 화신상회를 기웃거리다가 나와서 전차를 탄다. 그는 전차 안에서 우연히 1년 전쯤 맞선을 보았던 여자를 보게 되었다. 여자와 행복의 상관성에 생각이 미치자 느닷없이 사춘기 시절에 친구의 누나를 짝사랑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는 조선은행 앞에서 내려 이따금 찾는 다방에 들러서는 차를 마시고 레코드 음악을 듣는다. 친구가 아쉬워진 판에 면식이 있는 사람이 들어왔으나 비위가 맞지 않는 위인이어서 다방을 나오고 만다.
그리고 거리에서 보통학교 때의 동창과 맞닥뜨렸으나 아주 초라한 행색의 그 동창은 얼른 걸음을 피한다. 구보는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여 회피하는 동창에게서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는 고독감에 사로잡혀 경성역 대합실의 군중 속에 파묻혀본다. 때는 바야흐로 황금광 시대다. '시시각각으로 사람들은 졸부가 되고, 또 몰락하여 갔다.
'그때 중학 동창생으로 전당포집 아들인, 지지리도 공부를 못했던 열등생이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차를 마시자 해서 엉거주춤 따라갔는데, 동창생은 애인을 달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 호기 있게 칼피스를 주문하는 바람에 그는 심드렁해져 이내 친구와 헤어진다. 그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해진 황금광 시대의 물질만능주의 세태가 씁쓸하기만 하다.
구보는 다시 조선은행 앞까지 걸어와 신문사 기자로 재직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청했다. 다방에 늦게 나타난 친구는 구보가 쓴 소설작품을 언급하다가는, 제임스 조이스의 대작 <율리시즈>를 들먹인다.
구보는 그런 화제보다도 밖에서 들려오는 어린애 울음소리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그 울음은 어느 친구가 남긴 사생아를 기억나게 했다.
혼자가 된 구보는 종로경찰서 옆에서 다방을 경영하는 친구를 찾아가,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시간에 동경 유학 시절, 한 여자와 교제했던 때를 회상한다.
약혼자가 있었던 그녀는 구보의 결단을 기대했으나, 그는 그녀를 포기하고 만다. 비 내리는 그날에 마지막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구보는 그녀의 행복을 비는 마음 한편에,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자신의 무기력함과 어설픈 윤리의식으로 그녀를 잃은 데 대한 후회를 느낀다. 그는 주인인 친구와 함께 설렁탕을 들며 또 과거를 반추한다.
구보는 그 친구와는 밤 10시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 사이에 궁금히 여겼던 어떤 친구의 조카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시골에 딴살림을 차려 산다니 불우한 처지일 게 분명했다. 그는 수박을 사서 쥐어준다.
그는 친구를 기다리는 다방에서 생명보험 외판원 노릇을 하는 중학 선배와 대면하게 되었다. 그 선배는 구보를 '구포'라 부르며, 우쭐대는 태도를 보인다. 원고료를 얼마 받느냐고 물어오자 구보는 더 참지 못해서 마침 나타난 다방 주인 친구를 채근하여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조선호텔 앞을 지나며 그는 가난한 소설가와 식민지배를 당하고 있는 구차한 내 나라를 생각하니 마음이 침울해졌다. 그는 친구와 함께 낙원정의 카페로 찾아들었다.
새벽 2시, 종로 네거리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구보는 밤늦게 자신을 기다릴 어머니 생각에 돌아갈 집을 떠올린다. 그는 새삼 어머니의 사랑에 영탄하며 이제 자신도 생활을 가지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내일 밤 만나자는 친구의 제안에 집에서 창작에 몰두할 것이란 결심을 밝힌다.
밤거리를 순찰하는 순사의 모멸 어린 눈빛에도 구보는 불쾌감을 느끼지 아니하고 오로지 좋은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 하나에 조그만 행복감을 느낀다. 자신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그러기에 어머니가 혼인 얘기를 꺼내더라도 쉽사리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 짐작해보며 구보의 발걸음은 집을 향한다.
작품 특징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소설가 구보가 하루 동안 서울 거리를 배회하며 느끼는 내면 의식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당시 서울 거리의 풍물이나 사람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이를 바라보는 구보의 시선을 통해 1930년대 조선의 다양한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당대 사회에는 여러 가지 병폐가 생겨났고, 황금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는 구보의 시선은 매우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다.
구보는 물질 만능주의에 허덕거리는 천박한 인물들의 모습을 냉소적이고 자조적으로 표현하지만 구보도 이러한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한 지식인일 뿐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적으로는 인식하지만, 이에 대해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는 소심한 식민지 지식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부각되는 것은 특히 의식의 흐름이나 몽타주 기법 등 실험적인 소설 기법이다. 이 작품은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이 교차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 교차를 통해 주인공의 복합적인 내면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내면 의식의 표출에 있어 전통적인 서술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실험적인 기법을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이 작품은 또 창작 노트 그 자체를 소설화하는 고현학의 방법론과 여러 곳을 배회하는 산책자형 인물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꼽히기도 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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