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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쁘다
- 천양희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때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의 깊이를 느꼈을 때
혼자 식물처럼
잃어버린 것과 함께 있을 때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욕심을 적게 해서
마음을 기를 때
슬픔을
침묵으로 표현할 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로울 때
어려운 문제의 답이
눈에 들어올 때
무언가 잊음으로써
단념이 완성될 때
벽보다
문이 좋아질 때
평범한 일상 속에
진실이 있을 때
하늘이 멀리 있다고
잊지 않을 때
책을 펼쳐서
얼굴을 덮고 누울 때
나는 기쁘고
막차 기다리듯
시 한 편 기다릴 때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 쓰는 일일 때
나는 기쁘다
밥
- 천양희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서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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