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에세이 <그러라 그래> 인상깊은 구절
나와 다른 시선이나 기준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옳다’거나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같은 노래에도 관객의 평이 모두 다르듯 정답이랄 게 없었다. 그러니 남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살기로 했다.
- 「흔들리는 나이는 지났는데」 중에서
어느덧 칠십,
"나이 먹는 게 좋다. 너희도 나이 들어 봐봐. 젊음과 안 바꾼다" 했었는데 무심코 젊은 날의 내 사진을 하염없이 보고있다.
대체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나? 많은 나날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덧없이 빠져나갔구나!
- 「흔들리는 나이는 지났는데」 중에서
봄꽃을 닮은 젊은이들은
자기가 젊고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젊은 날에는 몰랐다.
그걸 안다면 젊음이 아니지.
자신이 예쁘고 빛났었다는
것을 알 때쯤 이미 젊음은
떠나고 곁에 없다.
- 「찬란한 봄꽃 그늘에 주눅이 든다」 중에서
살아서 얽힌 마음들을
채 풀지 못하고 떠나면
남은 사람의 후회는 끔찍하단다.
‘왜 그 말을 안 했을까?
사랑한다고 왜 말 못 했나’ 하는
후회들이 마음을 갉아먹는단다.
후회가 남지 않는 헤어짐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일까?
- 「죽기 전에 필요한 용기」 중에서
난 묘비명도 무덤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다녀간 흔적 없이
그렇게 사라지고 싶다.
그저 노래만이 남아
세상 이곳저곳에서 들리길 바란다.
- 「어떤 장례식」 중에서
작은 돌부리엔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 한 발짝 내딛게 해준다.
- 「느티나무 같은 위로」 중에서
왜 상처는
훈장이 되지 못하는 걸까?
살면서 뜻하지 않게 겪었던 아픔들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떻게 아무런 흉도 없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은 제 겪은 만큼’이란 말이 있다.
- 「감춰진 상처 하나씩은 다 갖고 있는」 중에서
고단한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내 노래가 지친 어깨 위에 얹어지는
따뜻한 손바닥만큼의 무게,
딱 그만큼의 위로라면 좋겠다.
토닥여줄 줄도 잘 모르지만,
”나도 그거 알아“
하며 내려앉는 손.
그런 손 무게만큼의 노래이고 싶다.
- 「사연을 읽는 이유」 중에서
“너무 힘든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끔 나에게 이렇게 묻는 이들이 있다.
덮쳐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선 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살면서 힘든 날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다.
어떻게 쉽기만 할까?
인생길 다 구불구불하고,
파도가 밀려오고
집채보다 큰 해일이 덮치고,
그 후 거짓말 같은 햇살과 고요가
찾아오고 그러는 거 아니겠나.
세상엔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 못 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땐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하늘을 볼 일이다.
- 「파도 앞에 서 있다면」 중에서
스스로 딛고 일어나기 힘들다면
자신을 붙잡아 줄
누군가의 손을 꼭 잡길 바란다.
내 편을 들어줄 한 사람만 있어도
살 힘이 생긴다.
곁에서 고개 끄덕이며
얘기를 들어줄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길 가다 모르는 할머니가
건네는 웃음, 사탕 하나에도
‘살아 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인생이리라.
- 「파도 앞에 서 있다면」 중에서
사람도 냉면과 똑같다는 생각이다
냉면도 먹어 봐야 맛을 알듯,
사람도 세월을 같이 보내며
더 깊이 알아가게 된다.
꾸밈없고 기본이 탄탄한
담백한 냉면 같은 사람이
분명 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한 사람,
어떤 경우에도 음색을
변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심지 깊은 아름다운 사람.
- 「냉면 같은 사람」 중에서
난 그저 나이고 싶다.
노래와 삶이 다르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노랫말과 그 사람의 실지 생활이
동떨어지지 않는 가수.
꾸밈없이 솔직하게 노래 불렀고
삶도 그러했던 사람.
- 「노래와 삶이 다르지 않았던 사람」 중에서
인생이 내게 베푼
모든 실패와 어려움,
내가 한 실수와 결례,
철없었던 시행착오도
다 고맙습니다.
그 덕에 마음자리가
조금 넓어졌으니까요.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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