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과 개미> 전문
활활 타고 있는 모닥불 속에 썩은 통나무 한 개비를 집어넣었다.
통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타오르자 나무통에서 개미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왔다. 한 무리가 통나무 뒤쪽으로 달리다가 불길에 휩싸여 타죽어 갔다.
나는 황급히 불붙은 통나무를 모닥불 속에서 끌어내었다. 생명을 건진 개미들의 일부가 모래 위를 달려가고, 더러는 소나무 가지 뒤로 기어오르기로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미들은 좀처럼 불길을 피해 달아나려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불길을 피해 나갔던 개미들도 방향을 바꾸어 다시 통나무 둘레를 빙빙 맴돌기 시작했다.
그 어떤 힘이 그들을 내버린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일까. 많은 개미들은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뒤로 다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통나무에 붙어서 그대로 타 죽어 가는 것이었다.
<모닥불과 개미> 해설
러시아의 소설가 솔제니친은 어느 날 산보를 하다가 모닥불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무심코 모닥불 옆에 뒹굴고 있는 썩은 통나무를 하나 집어 들어 불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그 통나무에는 개미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개미들이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통나무 속에서 마구 튀어나오더니 잠시 후 다시 불길 안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본 솔제니친은 그때의 느낌을 ‘모닥불과 개미’라는 글로 남겼습니다.
이 이상한 개미들의 행태를 보고, 솔제니친이 당시 부당한 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러시아 민중들이 절망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떠올렸을 거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생태계에서 흔히 목격되는 생물의 행동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희생해 남을 돕는 이타적 행동입니다. 이러한 이타적 행동으로 인해 일차적으로 자신은 손해를 보지만 희생의 결과, 자기 집단이 다른 집단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진화과정을 겪으면서 개미에게는 집단 전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도망치기보다는 필사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의지가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 출처 : <EBS 특별기획 통찰> 베가북스 펴냄
[작가에 대하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은 옛소련의 인권 탄압을 기록한 <수용소 군도>로 인해 반역죄로 추방되어 20년간이나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한 '러시아의 양심'으로 불려지는 작가입니다. 솔제니친은 <수용소군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암병동> 등의 작품으로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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