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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배움의 글/감성 에세이 모음

피천득 수필 ‘오월’ 전문

by 늘해나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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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네일 이미지

 

피천득 수필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의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얻었노라, 사랑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잃었노라, 사랑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피천득 수필집 「인연」에서

 

 

수필 일부가 들어간 이미지

 

 

피천득 작가에 대하여

 

오월에 태어나 오월에 작고하신

시인이자 수필가 피천득(1910~2007) 님은

호는 금아(琴兒)이며

상해 호강대학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경성대학 예과 교수,

서울대학교 문리대 및 사법대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피천득 님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특유의 섬세하고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여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수필 가운데 ‘인연’을 비롯하여

‘수필’ ‘플루트 플레이어’ 등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피천득 사진
피천득 (191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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