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에 관한 시 모음
장마의 계절
- 조병화
지금 나는
비에 갇혀 있습니다
갈 곳도 없거니와
갈 수도 없습니다
매일 매일 계속되는 이 축축한
무료
적요
어찌 이 고독한 나날을
다 이야기 하겠습니까
비는 내리다가
쏴와! 쏟아지고
쏟아져선 길을 개울로 만듭니다
훅, 번개가 지나가면
하늘이 무너져 내는 천둥 소리
하늘은 첩첩이 검은 구름
지금 세상 만물이
비에 묶여 있습니다.
장마
- 나태주
하늘이여 하늘이여 하늘이시여
억수로 비 쏟아져
땅을 휩쓸던 날.
장마
- 김옥진
오뉴월 손님
달갑잖은 손님
잘 치르고 나면
먹구름 속
햇살,
맛볼 수 있다
장마
- 오보영
제아무리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도
내리는 비
위로 당기지는 못하지요
제아무리
폭우가 쏟아져 내려도
흐르는 물
뒤로 돌리지는 못하지요
제아무리
힘이 장사라 해도
어제를
오늘로 바꾸지는 못하지요.
장마철 여행 떠나기
- 목필균
며칠을 두들겨대던
빗줄기 끝에
장마는
잠시 틈을 내어 쉬고 있었다.
밤새
길 떠날 이의 가슴엔 빗소리로 엉겨든
불안한 징조가 떠나질 않더니
설핏 잦아든 빗소리가 반가워
배낭을 메고 나선다.
차창에 비치는 산야는
물안개에 잠겨 그윽한데
강줄기에 넘치는 듯
시뻘건 황토 물이
맑고 고요한 물보다
격정을 더하게 한다.
수많은 토사물이 뒤섞여
흘러가는 강물
그 속에
일상의 찌꺼기도 던져 보낸다.
미련 없이.
장마비 내리는 밤
- 최다원
모두가 잠든 까만 밤
구성진 장마비가
어둠을 채운다.
희미한 가로등의 눈썹 끝에
매달린 물방울
부풀어 오른 비만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진다.
반쯤 열려진 창가에 서서
두 손을 모으듯
가만히 빌어본다.
잉태한 교만과 이기심
질긴 탐욕을 꺼내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순결한 마음과
비워낸 가슴 가득
꿈 하나만 간직하고픈
장마비 내리는 밤
장마 끝물
- 장석남
산 넘어 온 비가
산 넘어 간다
비단옷으로 와서
무명옷으로 간다
들 건너 온 비가
들 건너 간다
하품으로 와서
진저리로 간다
물 건너 온 비가
물결 건너 간다
뛰어온 비가
배를 깔고 간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국밥집에 마주앉은
가난한 연인의 뚝배기가 식듯이
이슬비가 되어서 비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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