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관한 시 모음
비가 오면
- 이상희
비가 오면
온몸을 흔드는 나무가 있고
아, 아, 소리치는 나무가 있고
이파리마다
빗방울을 퉁기는 나무가 있고
다른 나무가 퉁긴 빗방울에
비로소 젖는 나무가 있고
비가 오면
매처럼 맞는 나무가 있고
죄를 씻는 나무가 있고
그저 우산으로 가리고 마는
사람이 있고…
빗방울 하나가
- 강은교
무엇인가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비
- 천양희
쏟아지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구에겐가 쏟아지고 싶다.
퍼붓고 싶다.
퍼붓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군에겐가 퍼붓고 싶다.
쏟아지고 싶다.
장대비 내립니다
- 양재건
꼭두새벽부터 장대비 내립니다
이렇게 하면 속 시원하냐 하며
으스대듯 내립니다.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강바닥을 위해
시름의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는
환자들을 위해
너희들 울음 쌓느라 애쓰고 애썼다며
으스대며 장대비 시원하게 내립니다.
하나에도 벅차고
지키기 힘든 사랑도
장대비 같이 와~하며
몰려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름은 이래서 좋고
장대비도 이래서 더욱 좋습니다.
비오는 날의 풍경
- 정연복
비오는 날
거리에는 꽃이 핀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걸어다니는 예쁜 꽃들
송이송이 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스산한 날씨에도
꽃들이 피어
걸어다니는 꽃들이 피어
세상 풍경이 아름답다
쓸쓸하지 않다.
비 온 뒤 아침 햇살
- 유승도
나뭇잎 씻어줄래
투명하도록 푸르게 씻어줄래
푸른빛 타오르게 불태울래
벌들의 몸에도 붙어 반짝이며 날아갈래
죽은 나무에도 척 붙어 쓰다듬을래
바위에도 내려앉을래
거름더미에도 내려앉을래
눈부시게 만들래
노란 꽃처럼 한 송이 노란 꽃처럼
세상을 그렇게 만들래
비 그치고
- 류시화·
비 그치고
나는 당신 앞에 선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내 전 생애를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푸르름이 아주 깊어졌을 때쯤이면
이 세상 모든 새들을 불러 함께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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