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버스데이
- 오탁번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
라고 대꾸했다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할머니와 아저씨를 태운
행복한 버스가
힘차게 떠났다
소통과 공감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런 때 시골 할머니와 외국인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소재로 엮은 시가 웃음을 자아냅니다.
시골 할머니가 사투리로 독백처럼 한 말을 눈이 파란 외국인 아저씨가 영어로 알아들으며 주고받는 광경이 재미있습니다.
시의 후반부에 서양 아저씨가 친절하게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이렇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훈훈한 소통이 이루어지다니...’ 옛말에 귀를 기울이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이청득심(以聽得心)이 떠오릅니다.
오탁번 시인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퇴직 후 고향 제천에 가서 폐교를 문학관으로 개조해서 지내고 있습니다. 흙을 일구고 거름을 주면서 텃밭을 가꾸는 생활도 하고 있지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시인은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을 것 같습니다.
대개 그의 시는 읽다 보면 입꼬리가 자꾸 올라갈 정도로 재미가 있습니다. 그만의 천진난만과 유머 감각으로 시를 빚어내기 때문이죠. 그는 평소 국어사전을 곁에 두고 지낼 만큼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그래서 잘 모르던 우리말이 그의 시에 자주 나타납니다.
- 문현미 시인 ‘명시산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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