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관한 시 모음
겨울나무
- 도종환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 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 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 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하였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겨울 산길에서
- 이해인 수녀
추억의 껍질 흩어진 겨울 산길에
촘촘히 들어앉은 은빛 바람이
피리 불고 있었네
새 소리 묻은 솔잎 향기 사이로
수없이 듣고 싶은 그대의 음성
얼굴은 아직 보이지 않았네
시린 두 손으로 햇볕을 끌어내려
새 봄의 속옷을 짜는
겨울의 지혜
찢어진 나목의 가슴 한켠을
살짝 엿보다
무심코 잃어버린
오래 전의 나를 찾았네
겨울날
- 신경림
우리들
깨끗해지라고
함박눈 하얗게
내려 쌓이고
우리들
튼튼해지라고
겨울 바람
밤새껏
창문을 흔들더니
새벽 하늘에
초록별
다닥다닥 붙었다
우리들
가슴에 아름다운 꿈
지니라고
겨울의 노래
- 서정윤
겨울입니다
내 의식의 차가운 겨울
언제라도 따스한 바람은 비켜 지나가고
얼음은 자꾸만 두터운 옷을 껴입고
한번 지나간 별빛은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지는 곳은
너무 깊은 계곡입니다
바람이 긴 머리를 날리며 손을 흔듭니다
다시는 시작할 수 없는
남루한 의식의 겨울입니다.
나무들의 겨울나기
- 정연복
나무들의 겨울나기는
단순하다
본질만 꼭 필요한
알맹이만 달랑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가만히 내려놓는 것
봄부터 가을까지
세 계절 동안
알뜰히도 키웠던
자식같이 정든 이파리들
훌훌 떨쳐버리고
빈가지로 서 있는 것
이로써 새 봄의 새순을
말없이 기약하는 것이다.
나무들의
이 단출한 겨울나기는
뭔가를 끊임없이
쌓고 채우려고 안달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참 많은 걸 암시해 준다
겨울강이 전하는 말
- 안재식
한파가 몰려오고
얼음이
두껍게 덮여
냉전
중
일 때도 있지, 살다보면
그래도
얼음장 밑 강물은
여전히 숨어 흐르잖아
별이 잠든 겨울 강가에
꽃바람 오면
온통 꽃물 들 거야, 때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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