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카치오 소설 <데카메론>
페스트를 피해 교외로 떠난 사람들이 풀어놓은 100편의 이야기
병에 걸린 환자와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으면 그 병은 불이 마른 장작이나 기름종이에 확 옮겨 붙듯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큰 요즘, 새롭게 조명되는 고전이 있어요. 바로 이탈리아 소설가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가 쓴 <데카메론>입니다.
'10일간의 이야기'로 번역되는 이 작품은 14세기 중반 유럽에 '페스트(흑사병)'가 창궐하던 시기 쓰인 소설로, 근대 소설의 시초라고 평가받는 작품이지요.
당시 유럽에서는 페스트로 인해 3,000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해요. 의술과 치료약이 변변치 않았던 당시에는 피해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어요.
페스트로 가족을 잃은 7명의 부인이 슬픔을 달래기 위해 피렌체 대성당 미사에 참석합니다. 그중 한 명이 전염병을 피해 교외로 나가자고 제안하고, 청년 3명이 가세해 별장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죽음의 공포가 짙게 드리웠지만, 이들 10명은 "즐거움을 위해 살자"고 다짐해요. 그렇게 10명이 하루에 1편씩, 열흘 동안 100편의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언뜻 단순한 이야기 모음집 같은 이 책이 근대소설의 선구로 평가받는 이유는 신이 아닌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결혼과 가정, 경제와 종교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첫째 날 첫째 이야기를 보면, 피렌체의 고리대금업자 차펠레토는 떼인 돈을 받기 위해 프랑스 부르고뉴를 방문해요. 하지만 갑작스레 죽을병에 걸리고, 이제라도 천국에 가야겠다는 욕심에 지인에게 성직자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죠.
그의 고해성사에 감동한 성직자는 눈물까지 흘리며 차펠레토의 죄를 용서하고, 설교 소재로까지 사용해요. 역시 감동한 사람들은 차펠레토를 '성 차펠레토'라고 부르게 됩니다. 희대의 거짓말쟁이 차펠레토는 성인이 되고, 성자여야 할 성직자는 거짓말쟁이가 된 셈이죠.
넷째 날 첫째 이야기의 주인공 탕크레디 공은 과부가 된 딸이 미천한 남자와 사랑하게 되자, 그 남자를 잡아 죽여요. 딸의 사랑을 단념시키려는 조치였지만, 오히려 딸은 잔에 독약을 발라 그 술을 마시고 자결해요.
당시 귀족들은 대개 정략결혼을 통해 가문을 지켰는데, 보카치오는 다양한 남녀 관계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풍자적으로 보여줍니다.
보카치오는 "불행한 사람들의 고뇌를 덜어주기 위해 이 책을 쓴다"고 했어요. 수백 년 전 페스트를 견디기 위해 쓰인 이 책으로 지금의 답답함을 덜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 조선일보 <고전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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