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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레시피/외국문학

<서유기> 손오공과 요괴들의 대결

by 늘해나 2021.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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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보다 수백 년 앞선 중국의 판타지 소설

중국 명나라 신마소설, 오승은의 <서유기>

 

 

▲<서유기>는 삼장법사와 그의 세 제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불경을 얻기 위해 서역으로 향하며 겪는 힘겨운 고난의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오랫동안 민간에 전해지다가 여러 작가에 의해 창작됐었다.ⓒ위키피디아

 

 

 

타락한 관리 많던 명나라 중엽, 변신하고 하늘 날아다니는 손오공은 시대 저항하는 백성 소망을 대변해요.
작가는 환상세계 그려내서 현실 부조리를 비판하고자 했어요.

 

흔히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사오정'이라고 해요.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에 등장하는 사오정이 귀가 파묻혀 있어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이 중국 명나라 때의 소설 <서유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날아라 슈퍼보드>뿐만 아니라 일본의 유명한 만화 <드래곤볼>을 비롯해 수많은 게임이 대부분 <서유기>에서 실마리를 얻었어요.

 

<서유기>는 당나라의 삼장법사와 그의 세 제자인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가 지금의 인도가 있는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만나는 요괴를 물리치는 이야기를 다룬 고전소설이에요. 원저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현재로서는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오승은이 널리 인정받고 있어요. 그는 어릴 때부터 기괴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비문학을 많이 접했다고 해요.

 

<서유기>는 실존 인물인 현장법사가 불경을 얻기 위해 17년에 걸쳐 서역의 나라들을 여행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여기에 민간 전설, 설화 등과 오승은의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졌답니다. <서유기>의 시작을 알리는 손오공의 탄생이 얼마나 풍부한 상상으로 이뤄졌는지 살펴볼까요?

 

"산꼭대기에 신기한 바윗돌이 하나 서 있는데, 그 바윗돌은 천지가 처음 열린 이래 하늘과 땅의 정기를 끊임없이 받으며 오랜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차츰 신령한 기운이 서리더니 어느 날 바윗돌이 갈라지면서 둥근 공처럼 생긴 돌알을 한 개 낳았다. 바위에서 튀어나온 돌알은 바람을 쐬더니 그 즉시 한 마리의 돌 원숭이로 변했는데, 금빛이 번쩍거리는 두 눈, 쫑긋쫑긋하는 두 귀와 입, 코를 다 갖추고 팔다리까지 생겨 그 자리에서 걸어다닐 줄 알게 되었다."

 

바위에서 태어난 원숭이인 손오공은 구름을 타고 날 수 있고, 갖가지 변신술이 가능해요. 몸을 작게 만들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훤히 뚫어볼 수도 있어요. 이처럼 서유기에 등장한 판타지는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지요.

 

그런데 영국의 한 교수는 "판타지 문학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 것처럼 하는 것이다"고 말했어요. 이것은 판타지 소설은 우리의 상식이나 고정관념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다른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가 감추고 싶어하는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 아닐까요?

 

 

▲ 삼장법사가 경전을 구하여 장안에 도착했을 때, 열렬히 환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지식백과

 

 

<서유기>의 저자 오승은이 살던 명나라 중엽 이후 사회는 폭군의 억압과 간신의 농락, 관리의 부정부패로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백성은 고통으로 신음하고 대규모의 농민 봉기가 일어나기도 했죠. <서유기>에는 이러한 세태가 잘 드러나 있는데,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옥황상제에게 자격이 있다 해도 영소보전을 영원히 차지하는 건 아니지! 속담에 이르기를 '황제 자리는 돌아가면서 하는 법이니 내년엔 내 차례가 되리라!' 그런 말이 있잖아. 옥황상제가 영소보전을 나에게 양보하고 이사를 가겠다면 내가 봐주지! 하지만 영소보전에 계속 눌러앉겠다면 앞으로 너희 모두 마음 편하게 살지는 못할걸!"

 

옥황상제, 영소보전 등 환상의 세계를 기반으로 해 마치 현실의 이야기와는 무관한 듯하지만, 결국 손오공의 입을 빌려 당시 통치자들의 부조리를 풍자하고 있어요. 손오공 일행이 물리치는 요괴들 역시 부정부패한 탐관오리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손오공이 물리치는 요괴, 부패한 관리를 상징해요

 

서유기에는 주인공만큼이나 유명한 조연인 각종 요괴가 등장해요. 요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신비로운 힘을 가진 가공의 생물이지요.

 

 

▲ 서유기에 등장하는 요괴들 ⓒ지식백과

 

 

천궁의 별자리가 변신한 요괴인 '황포요괴'나 한번 부채질하면 불을 끄고 두 번 하면 바람을 일으키고 세 번 하면 비를 내리는 부채인 철선을 갖고 있는'철선공주', 벽수금정수를 타고 이동하는 '우마왕',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구령원성' 등이 손오공 일행의 여정을 방해하지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도 모두 요괴라는 점이에요. 손오공뿐만 아니라 사오정은 옥황상제의 시중을 들던 무관이었으나 연회때 실수로 잔을 깨뜨려 인간 세상으로 쫓겨나 요괴가 되었죠. 저팔계는 은하수를 지키던 수군대장이었으나 술에 취해 달의 선녀를 집적대 옥황상제가 인간 세상으로 쫓아내어 요괴가 됐죠.

 

그렇다면 시도 때도 없이 분노하는 손오공과 식욕과 성욕을 참지 못하는 저팔계, 어리석은 사오정이 '조연 요괴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힘겨운 여든한 가지 고난을 겪으면서도 불경을 구하겠다는 꿋꿋한 신념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지녔다는 점이에요.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의 반복이 결국 그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한 것이지요.

 

- 조선일보 [책으로 보는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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