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국민 작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광기 어린 편력기사의 모험, 전환기 지식인의 고뇌를 엿보다.
우리는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을 ‘기사’에 비유한다. “저 사람은 기사도 정신이 투철해”, “정말 정의로운 기사야” 라고 말하곤 한다.
언젠가부터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의 상징이 된 ‘기사’. 우리가 상상하는 기사는 아서 왕처럼 건장한 체격에, 화려한 갑옷을 입고,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채 말위에서 질주하는 모습이다. 군주에게 충성하고 약자를 구하는 멋진 그 이름 '기사'. 여기에 그러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이다. 스스로 자신을 편력기사로 부르며 정의를 위해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을 했던 돈키호테. 그는 누구인가. 그동안 <돈키호테>는 1605년 출판된 이래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 영화, 무용 등으로 만들어졌다.
심지어 돈키호테를 닮은 사람을 돈키호테형이라고 하거나 키호테시즘(돈키호테적인 성격이나 생활태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돈키호테’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 시대적 배경
이를 위해 먼저 작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스페인의 상황을 살펴보자.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1547년은 카를5세(1500~1558)가 지배한 시대로 ‘황금시대’라 불릴 만큼 번영을 누렸다. 신대륙에서 값싼 은이 대량 유입되었고, 식민지를 수출시장으로 한 모직물 공업이 번창했다.
카를5세의 뒤를 이은 필리페2세(1527~1598)가 레판토 해전(1571년 오스만튀르크와 기독교 연합 함대가 코린트 만의 레판토 앞바다에서 충돌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 기세는 점점 높아져 갔다. 절대왕정을 확립한 필리페2세는 무적함대를 만들어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영국 엘리자베스1세에게 패하면서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유럽에서 스페인이 최고의 강자로 이름을 날리던 16세기 초에 기사도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기사도 소설에서 불가능이 없을 것 같은 스페인의 자신감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1547년 카를5세 치하에 태어난 세르반테스는 필리페2세 때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고 이후 몰락해 가는 조국을 보았다. 레판토 해전에서 한쪽 팔을 잃은 그의 인생은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안에 자기가 겪은 스페인의 영광과 쇠퇴를 담으려 했다. 그 결과 기사도 소설에만 존재하는 영광의 세계를 현실에서 찾고 있는 돈키호테가 탄생한 것이다.
✑ 줄거리
<돈키호테> 주인공의 본명은 ‘알론소 키하노’다. 그는 스페인 라만차라는 작은 마을의 가난한 귀족이었다. 그는 기사와 아름다운 아가씨, 마법사, 용, 마법에 걸린 숲, 신비한 검이 등장하는 모험담에 푹 빠진 나머지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세상을 유랑하는 편력기사가 되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명예를 드높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산초 판사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모험을 찾아 세상을 떠돌면서 악을 바로잡고, 불행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로 다짐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라만차의 돈 키호테’라고 붙인다.
그가 떠난 편력은 온통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행동의 연속이었다. 풍차를 거인이 둔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갤리선에 노역을 하러 가는 죄수들을 풀어 주고 억울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만족한다. 지나가던 우리에 든 사자와 대결하기도 한다. 그는 시종일관 주위 사람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지만 결코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세르반테스는 기사도 소설에 사로잡힌 돈키호테를 이용하여 당시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귀족의 행태를 풍자했다. 죄수를 풀어주는 이야기도 기존사회 질서에 대한 도전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로테아와 돈 페르난도의 사랑을 통해 신분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사랑을 말하고, 섬의 영주가 된 산초에게 충고하는 모습에서 그가 바라는 이상사회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는 당시 중세사회를 넘어 문예부흥기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근대적 자유주의자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 문학적 가치
<돈키호테>는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인물을 이해하기엔 어려울 수 있다. 그 이유는 돈키호테가 꿈꾸는 이상과 행동이 모순되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열망하는 이상은 이미 쇠락해버린 스페인에 대한 정의로 볼 수 있고, 광기 어린 행동은 새로운 르네상스가 추구한 자유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돈키호테가 현실의 정체성을 깨달았을 때 죽음을 맞는 부분에서 혼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철저한 논리와 행동의 일치, 주변의 눈에 아랑곳하지 않는 정의감에 대한 열망,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저돌적인 공격, 더할 수 없는 덕행에 빠져드는 광기 어린 행동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방황하는 전환기 지식인의 고뇌와 실천력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돈키호테가 주는 문학적 가치이자 묘미이다.
✑ 산초에 대한 재해석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짚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산초에 대한 재인식이다. 우리는 항상 문학작품에서 주인공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문학작품 속에는 주인공과 대조되는 주변 인물이 존재한다. <돈키호테>의 산초가 그렇다. 그동안 산초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인물로 인식되어 왔다.
단순하고 솔직해서 배고픔과 추위 등 본능에 충실한 산초.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돈키호테의 여정에 참여한다.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돈키호테가 언젠가 섬의 영주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허황된 행동을 하는 돈키호테를 적절히 통제하며 돕는다.
돈키호테가 물레방아를 괴물로 생각해 공격하려하자 로시탄테의 뒷다리를 묶고 마법사가 한 짓이라고 속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를 만나러 가겠다는 돈키호테를 막기 위해 지나가는 못생긴 시골 아가씨들을 마법에 걸린 둘시네아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섬의 영주가 되어 모자에 대한 명판결을 내리고, 노인들의 분쟁을 해결하여 섬 주민들에게 현자라고 칭송받기도 한다.
산초는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스스로 영주의 자리를 내놓은 뒤 돈키호테에게 돌아가 임종을 지키며 숭배하는 현명한 휴머니스트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간다. 산초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평범한 우리 자신과 많이 닮아 있다.
✑ 돈키호테가 의미하는 바는...
돈키호테의 꿈을 향한 용기와 실천은 전환기 지식인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자세이다. 많은 고뇌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결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기에는 2% 부족하다. 돈키호테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산초를 통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산초는 실현 가능한 꿈을 가지고 돈키호테를 돕는다. 산초와 같이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여 돈키호테처럼 끝없는 열정을 가지고 실천해 간다면 그것이 바로 21세기에 적합한 효과적인 추진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서울신문 <읽어라 청춘-서울대 추천도서 100선> 중에서
<돈키호테> 작품 이해
키호티즘(Quixotism)
이 소설의 대립적인 두 인물,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이상과 현실, 물질과 정신, 환상과 사실의 충돌을 상징한다. 여가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나아가는 돈키호테의 성격으로부터 '키호티즘(Quixotism)'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것은 돈키호테적인 성격이나 생활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실상 모든 선구자, 예언자, 개혁자들의 보편적인 특성이 되어 있다. 눈앞에 보이는 사실적 현실을 부정하고 보다 높은, 보다 가치 있는 환상적 현실, 즉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의 성격인 것이다. 왜냐하면 키호티즘이란 결국 현실적 물질성에 도전하여 어떤 이상향의 세계를 이 세상에 실현하려는 이상주의적 시도요, 의지력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소설 <돈키호테>를 단순한 미친 사람의 이야기에 머물게 하지 않고 더 높은 뜻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풍차’가 상징하는 것
'풍차'는 이 작품의 주제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제재 중의 하나로서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풍차에 대한 착각은 돈키호테가 구시대적 이념에 사로잡혀 변화하는 현실에 대해 어떠한 새로운 성찰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그가 지나간 시대의 기사도 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
부의 상징 '은수저' 유래
“반짝인다고 다 금이 아니며, 모든 사람이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은 아니야.”
산초가 아내 테레사에게 한 말로, 부의 상징으로 등장한 은수저는 이 구절에서 유래됐다.
- 자료 : 지식백과, 이투데이(조성권 미래설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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