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톱 이야기
- 김정한(1908~1996)
20년이 넘도록 내처(줄곧 한결같이) 붓을 꺾어 오던 내가 새삼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별안간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교원 노릇을 해 오던 탓으로 우연히 알게 된 한 소년과, 그의 젊은 홀어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이 살아오던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 ― 이들에 관한 그 기막힌 사연들조차, 마치 지나가는 남의 땅 이야기나,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 있는 데 대해서까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우란 소년은 내가 직접 담임했던 제자다. 당시 나는 K라는 소위 일류 중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첫 시간의 일이었다. 지각생이 많았다. 지각생이 많으면 교사는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유독 닦이는('시달리다' 방언) 놈은 으레 그런 일이 잦은 놈들이다.
"넌 또 지각이로군?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건우의 차례였다. 다른 애와 달리 그는 옷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아래 윗도리 옷깃에서 물이 사뭇 교실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지 않는가!
"나릿배 통학생임더."
낮고 가는 목소리가 그의 가냘픈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오듯 했다. 그리고 이내 울상이 된 얼굴을 아래로 떨구었다. 차라리 무엇인가를 하소연하는 듯이 느껴졌다.
"나랫배 통학생?"
이쪽으로선 처음 듣는 술어였다.
"맹지면에서 나릿배로 댕기는 아입니더."
지각생 아닌 다른 애가 대신 대답했다. 맹지면(鳴旨面)이라면 김해 땅이다. 낙동강 하류 강을 건너야만 부산으로 나올 수 있는 곳이다.
"나룻배 통학생이라……."
나는 건우의 비에 젖은 옷을 바라보면서 자리에 들어가라고 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나는 건우란 소년에게 은근히 동정이 가게 되었다. 더더구나 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고부터는. 동무들끼리 어울려 놀 때 그를 곧잘 '거무(거미)'라고 놀려 대던 이상한 별명의 유래도 곧 알게 되었다. 그의 고향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거미란 짐승은 물에 날쌘 놈이라 해서 즈 할아버지가 지어 준 아명이었다는 거다. 거미! 강가에 사는 사람들의 자식 아끼는 심정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호적에 올릴 때는 부득이 건우로 했으리라. 그것도 아마 누구의 지혜를 빌어서.
두 번째로 내가 건우란 소년에 대해서 관심을 더욱 가지게 된 것은 학기 초 가정 방문을 나가기 전에 그가 써낸 작문을 읽고부터였다. (나는 가정 방문을 나가기 전 가끔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에 관한 글을 써 오라고 하였다).
<섬 얘기>란 제목의 그의 글은 결코 미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용은 끔찍한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가 사는 고장 ― 복숭아꽃도, 살구꽃도, 아기 진달래도 피지 않는 조마이섬은, 몇백 년, 아니 몇천 년 갖은 풍상과 홍수를 겪어 오는 동안에 모래가 밀려서 된 나라 땅인데, 일제 때는 억울하게도 일본 사람의 소유가 되어 있다가 해방 후부터는 어떤 국회 의원의 명의로 둔갑이 되었는가 하면, 그 뒤는 또 그 조마이섬 앞 강의 매립 허가를 얻은 어떤 다른 유력자의 앞으로 넘어가 있다든가 하는 ― 말하자면 선조 때부터 거기에 발을 붙이고 살아오던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소유자가 도깨비처럼 뒤바뀌고 있다는, 섬의 내력을 적은 글이었다.
그저 그런 정도의 얘기를 솔직히 적었을 따름인데, 어딘지 모르게 무엇인가를 저주하는 듯한, 소년의 날카롭고 냉랭한 심사가 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이 갑자기 무슨 고발이라도 당한 심정으로 그 글발을 따로 제쳐서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가정 방문이 있는 주간은 대개 오전 수업뿐이다. 점심 시간이 시작될 무렵 나는 건우를 교무실로 불렀다.
"오늘 명지로 갈까 하는데, 너 외에 몇이나 있지?"
"A반 학생은 저 하나뿐입니더."
건우의 노르께한 얼굴에는 순간적인 그늘이 얼씬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럼 1시 반쯤 해서 현관 앞으로 다시 오게."
명지 같음 어둡기 전에 돌아오기가 힘들는지 모른다. 나는 부랴부랴 점심을 마치고서 교무실을 나섰다. 건우는 벌써 현관께로 와 있었다. 역시 약간 어둔 얼굴을 하고, 아마 미리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서 가는 것이 약간 켕겼던 모양이었다.
"가 볼까!"
내가 앞장을 서듯 했다. 버스 요금도 제 것까지 내가 얼른 내는 걸 보고는 아주 송구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명지로 가는 하단 나루까지는 사오십 분이면 족했다. 그러나 한 척밖에 없다는 그 나룻배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집이 저쪽 나루터에서 먼가?"
나는 갈대 그림자가 그림처럼 고요히 잠겨 있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예, 제북(제법) 갑니더."
그는 민망스런 듯이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눈을 역시 물 위로 떨어뜨렸다.
"얼마나?"
"반 시간 좀더 걸립니더."
"그럼 학교까지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는 걸?"
"나릿배만 진작 타지고 빠른 날은 두어 시간만 하면 됨더."
"그래? 그래서 지각을 자주 하는군."
나는 환경 조사표의 카피를 펴 보았으나, 곁에 사람들이 있기에 더 묻지 않았다. 아니, 설사 곁에 다른 사람들이 없다 하더라도, 아직 열다섯 살밖에 안 되는 소년에게 물어도 좋을 만한 그런 가정 형편이 못 되었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 33세 농업, 할아버지 62세 어업, 삼촌 32세 선원, 재산 정도 하(下),
끼우뚱거리는 나룻배 위에서도 건우의 행복하지 못할 가정 환경이 자꾸만 내 머리 속에 확대되어 갔다. 나룻배를 내려서자, 갈밭 속을 뚫고 나간 좁고 긴 길이 있었다. 우리는 반 시간 남짓 그 길을 걸어가면서도 별반 얘기가 없었다.
"아버진 언제 돌아가셨지?"
해 놓고도 오히려 후회할 정도였으니까.
"육이오 때라 캅디더만……."
건우의 말눈치가 확실치 않았다.
"어쩌다가?"
"군에 나갔다가 그랬다 캅디더."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도 잘 모른단 말인가?"
"야, 그래도 살아 온 사람들 말이 암마 '워카 라인'인가 하는 데서 그랬을 끼라 카데요."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건우의 이야기는 비교적 담담하였다.
"그래,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하나?"
나는 속으로 그의 나이를 손꼽아 보았던 것이다.
"잘 모릅니더. 저가 두 살 때 군에 나갔다 카니……. 그라곤 통 안 돌아왔거던요."
나를 쳐다보는 동그스럼한 얼굴, 더구나 그린 듯이 짙은 양미간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을씨년스런 빛이 내비쳤다. 순간 나는 그의 노르께한 얼굴에서 문득 해바라기꽃을 환각했다.
삼사월 긴긴 해라더니, 보릿고개는 오후 세 시가 훨씬 지나도 해가 메끝과는 멀었다. 길가 수렁과 축축한 둑에는 빈틈 없이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쑥쑥 보기 좋게 순과 잎을 뽑아 올리는 갈대청은, 그 곳을 오가는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하늘과 땅과 계절의 혜택을 흐뭇이 받고 있는 듯, 한결 싱싱해 보였다.
"저 갈대들이 다 자라면 지나다니기가 무서울 테지? 사람의 길이 훨씬 넘을 테니까."
나는 무료에 지쳐 건우를 돌아보았다.
"괜찮심더, 산도 아인데요."
그는 간단히 대답할 뿐이었다. 아직도 짐승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것을 미처 모르는 모양이었다. 길바닥까지 몰려나왔던 갈게들이, 둔탁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황급히 구멍을 찾아 흩어지는가 하면, 어느 하늘에선지 종달새가 재잘재잘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잔등에 땀을 느낄 정도로 발을 재게 떼 놓아, 건우가 사는 조마이섬에 닿았을 때는 해가 얼마 만큼 기운 뒤였다.
섬의 생김새가 길쭉한 주머니 같다 해서 조마이섬이라고 불려 온다는 건우의 고장에는, 보리가 거의 자랄 대로 자라 있었다. 강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푸른 물결이 제법 넘실거리곤 했다. 낙동강 하류의 삼각주 일대가 대개 그러하듯이, 이 조마이섬이란 데도 사람들이 부락을 이루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집 두 집 띄엄띄엄 땅을 물고 있을 따름이었다.
건우네 집은 조마이섬 위쪽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역시 외따로 떨어진 집이었다. 마침 뒤꼍 사래 긴 남새밭에 가 있던 어머니가 무슨 낌새를 차렸던지 우리가 당도하기 전에 어느새 사립께로 달려와 있었다.
"인자 오나?"
아들에게부터 먼저 말을 건네고 나서 내게도 수인사를 하였다.
"우리 건우 선생인가배요?"
상냥하게 웃었다. 가정 조사표에 적혀 있는 서른세 살의 나이보다는 훨씬 핼쑥해 보였으나, 외간 남자를 대하는 붉은빛이 연하게 감도는 볼에는 그래도 시골 색시다운 숫기가 내비쳤다.
"수고하십니더."
하고 나는 사립을 들어섰다.
물론 집은 그저 그러했다. 체목(집을 지을 때 기둥, 도리 따위에 쓰는 재목)은 과히 오래 되지 않았지만, 바깥 일손이 모자라는 탓인지, 갈대로 엮어 두른 울타리에는 몇 군데 개구멍이 나 있었다.
"좀 들어가입시더. 촌 집이 돼서 누추합니더만……."
건우 어머니는 나를 곧 안으로 인도했다. 걸레질을 안 해도 청은 말끔했다. 굳이 방으로 모시겠다는 것을 나는 굳이 사양하고 마루 끝에 걸쳤다.
"어머니 혼자 힘으로 공부시키기가 여간 힘들지 않으실 텐데……."
건우가 잠깐 자리를 비키는 것을 보고 나는 으레 하는 식으로 가정 사정부터 물어 보았다. 할아버지와 아저씨와 그리고 재산 따위에 대해서.
― 할아버지는 개깃배를 타시고, 재산이랄 끼사 머 있입니꺼.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밭뙈기들은 나라 땅이라 캤다가, 국회의원 땅이라 캤다가……. 우리싸 머 압니꺼. ― 이렇게 대략 건우군의 글에서 알았을 정도의 얘기였고, 건우의 삼촌에 대해서는 웬일인지 일체 말이 없었다. 대신 길이 먼데다 나룻배까지 타야 되기 때문에 건우가 지각이 많아서 죄송스럽다는 얘기와, 아버지가 없으니 그런 점을 생각해서 잘 도와 달라는 부탁이 고작이었다.
생활은 어떻게 무사히 꾸려 나가느냐고 했더니, 시아버님이 고깃배를 타기 때문에 가끔 어려운 돈을 기백(백의 몇 배가 되는 수) 원씩 가져온다는 것과, 먹고 입는 것은 보리 농사와 채소로써 그럭저럭 치대어 간다는 얘기였다.
"재첩은 더러 안 건지세요?"
강마을 일이라 이렇게 물었더니,
"그건 남자들이라야 안 됩니꺼. 또 배도 있어야 하고요."
할 뿐, 그러나 이쪽에서 덤덤하니까,
"물 빠질 땐 개발이싸 늘 안 나가는기요. 조개 새끼도 파고 재첩도 줏지만 그런기사 어데 돈이 댑니꺼."
이렇게 덧붙였다.
잠시 안 보이던 건우가 어디서 다섯 홉짜리 정종을 한 병 들고 왔다. 이마에 땀이 번질번질한 걸 보면 필시 뛰어온 게 틀림없다. 아마 어머니가 시킨 일이려니 싶었다.
나는 미안스런 생각으로 건우 어머니가 따라 주는 술잔을 받았다. 손이 유달리 작아 보였다. 유달리 자그마한 손이 상일에 거칠어 있는 양이 보기에 더욱 안타까울 정도였다. 기어이 저녁까지 대접하겠다고 부엌으로 가 버린 뒤, 나는 건우를 앞에 두고 잔을 들면서, 그녀의 칠칠한 인사 범절에 새삼 생각되는 바가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다시 보았다. 농사 집치고는 유난히도 말끔한 마루청,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지 않은 장독대,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길찬 장다리꽃들……. 그 어느 것 하나에도 그녀의 손이 안 간 곳이 없으리라 싶었다.
이러한 집 안팎 광경들을 통해서 나는 건우 어머니가 꽤 부지런하고 친절한 여성이라는 것을 고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젊음이 한창인 열아홉부터 악지 세게 혼자서 살아왔다는 것과, 어려운 가운데서도 외아들 건우를 나룻배를 태워 가면서까지 먼 일류 중학에 보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농촌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우의 입성이 항시 깨끗했다는 사실들이 어련히 안 그러리 싶어지기도 했다.
얼핏 보아서는 어리무던한 여인 같기도 하지만 유난히 볼가진 듯한 이마라든가, 역시 건우처럼 짙은 눈썹 같은 데선 그녀의 심상치 않을 의지랄까, 정열 같은 것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나는 술상을 물리고서, 건우의 공부방을 ― 어머니의 방일 테지만 ― 잠깐 들여다보았다. 사과 궤짝 같은 것에 종이를 발라 쓰는 책상 위에는 몇 권 안 되는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그 가운데서 '섬 얘기'라고 잉크로써 굵직하게 등마루에 씌어진 두툼한 책 한 권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섬 얘기? 저건 무슨 책이지?"
나는 건우를 돌아보고 물었다.
"암 것도 아닙니더."
"소설?"
"아입니더."
"어디 가져와 봐!"
건우는 싫어도 무가내(막무가내, 달리 어찌할 수 없음)라 뽑아 오면서,
"일기랑 또 책 같은 거 보고 적은 김더."
부끄러운 내색을 하였다.
"일기는 남의 비밀이니까 읽을 수가 없고, 어디 책 읽은 소감이나 뵈 주게."
나는 책을 도로 돌렸다. 건우는 마지못해 여기저길 뒤적거리다가 한 군데를 펴 주었다. 또박또박 깨알같이 박아 쓴 글씨였다.
××× 여사는 어머니처럼 혼자 사시는 분이라 그런지 그 분의 글에는 한결 감동되는 바가 있었다. <내가 본 국토> 속의 한 구절 ― "그래도 선거 때가 되면 소속 육지에서 똑딱선을 가지고 섬 백성을 모시러 오는 알뜰한 정당이 있어, 이들은 다만, 그 배로 실려 가서 실상 자기네 실생활과는 무연한 정치를 위하여 지정해 주는 기호 밑에 도장을 찍어 주고 그 배에 실려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현대 문명의 혜택이라곤 아직 받아 보지 못한 그들의 생활 속에도 현대 문명인이 행사하는 선거란 상식이 깃들게 되고, 어느 정당이나 정치의 영향도 알뜰히 받아 보지 못한 그네들에게도 투표하는 임무만은 지워져야 하고 조국의 사랑이라곤 받아 본 일이 없이 헐벗고 배우지 못한 그들의 아들들이 먼저 조국을 수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훈련을 받고 총을 메고 군인이 되어 갔다는 것……." 우리 아버지도 응당 이러한 군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리라. 그래서 언제 어디서 쓰러졌는지도 모르고, 따라서 국군 묘지에도 묻히지 못하고, 우리에겐 연금도 없고…….
내 눈이 미처 젖기 전에 건우는 부끄러운 듯이 그 노트를 내게서 뺏아 갔다.
"건우야 !"
나는 노트 대신 건우의 손을 꽉 쥐었다.
"이 땅이 이곳 사람들의 땅이 아니랬지? 멀쩡한 남의 농토까지 함께 매립 허가를 얻은 어떤 유력자의 것이라고 하잖았어? 그러나 두고 봐. 언젠가는 너희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될 거야. 우선은 어떠한 괴로움이 있더라도, 억울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꾹 참고 살아가야 해."
어조가 어떻게 아까 그 노트를 읽을 때와 같은 것을 깨닫고 나는 잠깐 말을 끊었다. 건우는 내처 묵연해 있었다.
"나라 땅, 남의 땅을 함부로 먹다니! 그건 땅을 먹는 게 아니라, 바로 '시한 폭탄'을 먹는 거나 다름없다. 제 생전이 아니면 자손대에 가서라고 터지고 말거든! 그리고 제 아무리 떵떵거려 대도 어른들은 다 가는 거다. 죽고 마는 거야. 어디 땅을 떼 짊어지고 갈 수야 있나. 결국 다음 이 나라 주인인 너희들의 거란 말야. 알겠어?"
나는 말이 절로 격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저녁상이 들어왔다.
부엌에서 바깥 동정을 죄다 엿들었는지 건우 어머니는 저녁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손을 닦으며 청 끝에 와 걸치더니,
"선생님 이야기는 우리 건우한테서 잘 듣고 있심더. 그라고 이 섬 저 웃바지에 사는 윤샌도 선생님 말을 곧잘 하데요. 우리 건우가 존 담임 선생님 만났다면서……."
해가 막 떨어진 뒤라 그런지 그녀의 웃음이 적이 붉게 보였다.
"윤샌이라뇨?"
윤 생원이라는 말인 줄은 알았지만, 그가 누군지 미처 생각이 안 났다.
"성은 윤씨고, 이름이 머라 카더라― "
건우를 흘끔 돌아보며,
"수딕이 할배 이름이 멋고?"
"춘삼이 아잉기요."
건우의 말이 떨어지자,
"내 정신 보래. 그래 춘삼 씨다."
그녀는 다시 나를 돌아보며,
"춘삼이란 어른인데 와 선생님을 잘 알데요. 부산에도 가끔 나갑니더. 쬐깐 포도밭도 가주고 있고요……."
"윤춘삼? ……네, 이제 알겠습니다."
비로소 생각이 났다.
"그 분하고는 어데서도 같이 지냈담서요?"
건우 어머니는 '세상은 넓고도 좁지요?' 하는 듯한 눈매로 웃어 보였다.
"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적이 놀랐다. 어디서든 나쁜 짓 하고는 못 배기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까지 했다. 그와 동시에, 지난날 어떤 어두컴컴한 곳에서 그 윤춘삼이란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던 일, 그리고 다시 소위 큰집이란 데서 한때 같이 고생을 하던 갖가지 일들이 마치 구름 피어 오르듯 기억에 떠올랐다.
― '6·25' 때의 일이었다. 나는 어떤 혐의로 몇몇 사람의 당시 대학 교수들과 함께 육군 특무대란 데 갇혀 있었다. 거기서 윤 생원을 처음 만났다. 물론 그 땐 그가 이곳 사람인 줄도 몰랐다. 무슨 혐의로 들어왔느냐고 물어도 그는 얼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곧 나갈 거라고만 했다. 곧 나갈 거라고 장담을 하던 사람이 얼마 뒤 역시 우리의 뒤를 따라 감옥으로 넘어왔다. 감옥에서는 그도 제법 사상범으로 통해 있었다.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되, '송아지 빨갱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유는 간단했다.―한창 무슨 청년단인가 하는 패들이 마구 설칠 땐데, 남에게 배내를 주었던 그의 송아지를 그들이 잡아먹은 게 분해서, 배내 먹이던 사람에게 송아지를 물어내라고 화풀이를 한 것이 동기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 바보 같은 사람이 뒤퉁스럽게 그 청년단을 찾아가서 그런 고자질을 한 것이 꼬투리가 되어, "이 새끼 맛 좀 볼 테야?" 하는 식으로 잡혀 왔다는 이야기였다. 그 밖에 또 하나 주목받을 이유가 될 만한 것은, 자기 고향인 조마이섬에 문둥이떼가 이주해 왔을 때― 물론 정부의 방침이었지만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싸우다가 결국 경찰 신세를 졌던 일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그 자신 무슨 영문인지를 확실히 모르고서 옥살이를 했다. 다만 '송아지 빨갱이'라는 별명으로서.
어쩌다가 세수터에서라도 마주칠 때,"송아지 뺄갱이!"할라치면, 텁수룩한 머리를 끄덕대며 사람 좋게 웃던 윤춘삼 씨의 그 때 얼굴이 눈에 선해 왔다.
"좋은 사람이었지요."
"그라문니요! 지금도 우리 집에 가끔 옵니더."
건우 어머니도 맞장구를 쳤다.
이야기꾼들이 곧잘 쓰는 '우연성'이란 것을 아주 싫어하는 나지만, 그날 저녁 일만은 사실대로 적지 않을 수가 없다.
어둡기 전에 건우의 집을 나서서 하단 쪽 나루터로 되돌아오던 길목에서 뜻밖에 이제 얘기하던 바로 그 윤춘삼이란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야 ― 이거 ×선생 아니요! 이런 섬에 우짠 일로?"
송아지 뺄갱이, 아니 윤춘삼 씨는 덥석 내 손을 잡으며 반가워했다.
"아이들 가정 방문을 왔다 가는 길이죠. 참 오랜만이군요."
"가정 방문?"
그는 수인사는 제쳐놓고,
"그럼 건우 집에도 들렸겠네요?"
"네, 이 섬에는 건우 한 애뿐입니다. 내가 맡아 있는 애로서는―"
"마침 잘됐다. 허허 참 세상에는 이런 수도 다 있다 카이! 인자 막 선생 이바구를 하고 오던 참인데……."
윤춘삼 씨는 뒤에 따라오던 웬 성큼한 털보 영감을 돌아보며,
"자 인사 드리시오. 당신 손자 거무란 놈 선생이요."
하며 내처 허허 하고 웃어 댔다. 벌써 약간 주기가 있어 보였다. 두 사람이 인사를 채 나누기 전에 윤춘삼 씨는,
"허허, 노상에서 이럴 수가 있나. 나도 여러 해 만이고……."
하며 털보 영감더러 하단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아니 바로 떠밀듯 했다.
"암 그래야지. 나도 언제 한 분(한 번) 꼭 찾아볼라 캤는데, 바래다 드릴 겸 마침 잘됐구만."
멀쩡한 날에 고무장화를 신은 품이 누가 보나 뱃사람이 완연한 건우 할아버지도 약간 약주가 된 데다 역시 같은 떼거리였다.
윤춘삼 씨는 만나자 덥석 잡았던 내 손을 내처 아플 정도로 쥔 채 놓지 않았고, 건우 할아버지도 나란히 서게 되어 셋은 가뜩이나 좁은 들길을 좁으라 걸어 댔다. 땅거미를 받아선지, 건우 할아버지의 갯바람에 그을린 얼굴이 거의 검둥이에 가까울 정도로 검어 보였다.
"갈밭새 영감, 오늘 참 재수 좋네. 내가 술 샀지. 또 이런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지……. 그러나 이분에는 영감이 사야 돼오."
윤춘삼 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암 내가 사야지. 이분에는 정종이다. 고놈의 따끈한!"
아마 '갈밭새'가 별명인 듯한 건우 할아버지는, 그 억세고 구부정한 어깨를 건들거리며 숫제 신을 내듯 했다. 하단 나룻가의 술집은 모두가 그들의 단골인 모양이었다.
"어이 또 왔쇠이!"
건우 할아버지가 구부정한 어깨를 먼저 어느 목로집으로 들이밀었다. 다시 술자리가 벌어졌다. 술자리랬자 술상 대신 쓰이는 네 발 달린 널빤지를 사이에 두고 역시 네 발 달린 널빤지 걸상에 마주 앉은 것이었지만.
"술은 정종! 따끈한 놈으로. 응이, 알겠소? 우리 거무 선생님이란 말이어!"
갈밭새 영감은 자기와 비슷하게 예순 고개를 넘어 보이는 주인 할머니더러 일렀다.
그가 소원인 듯 말하던 '따끈한 정종'은 그와 윤춘삼 씨보다 나를 먼저 취하게 했다. 그러나 좀처럼 놓아줄 눈치들이 아니었다.
"한 잔만 더. "
이번에는 건우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연신 내 손을 덥쌌다.
"비록 개깃배를 타고 있지만 나도 과히 나뿐 놈이 아임데이. 내, 선생 이바구 다 듣고 있소. 이 송아지 뺄갱이(섬에까지 그런 별명이 퍼졌던 모양이다)한테도 여러분 들었고 우리 손잣놈한테도 듣고 있소. 정말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그까진 국회 의원이 다 먼교? 돈만 있음 ×라도 다 되는 기고, 되문 나랏땅이나 훑이고 팔아묵고 그런 놈들이 안 많던기요? 왜, 내 말이 어데 틀맀십니꺼?"
갈밭새 영감은 말이 차츰 엇나가기 시작했다. 자기로선 취중 진담일지 모르나 듣기만 해도 섬뜩한 소리를 함부로 뇌까렸다. 그런 얘길랑 그만두고 술이나 들라 해도 갈밭새 영감은 물론 이번엔 윤춘삼 씨까지 되레(도리어) 가세를 하고 나섰다.
"촌사람이라꼬 바본 줄 알지 마소. 여간 답답해서 그런 소릴 하겠소."
전깃불이 들어왔다. 불빛에 비친 갈밭새 영감의 얼굴은 한층 더 인상적이었다. 우악스럽게 앞으로 굽어진 두 어깨 가운데 짤막한 목줄기로 박혀 있는 듯한 텁석부리 얼굴! 얼굴 전체는 키를 닮아 길쭉했으나, 무엇에 짓눌려 억지로 우그러뜨려진 듯이 납작해진 이마에는, 껍데기가 안으로 밀려들기나 한 듯한 깊은 주름이 두어 줄 뚜렷하게 그어져 있었다. 게다가 구레나룻에 둘러싸인 얼굴 전면이 검붉은 구릿빛이 아닌가! 통틀어 원시인이라도 연상케 하는 조금 무서운 면상이었다.
"과 빤히 보능기요? 내 안주(아직) 술 안 취했음데이. 염려 마이소."
갈밭새 영감은 기름이 절은 수건을 꺼내더니 이마를 한 번 훔치고서, "인자 딴 말은 안 하지요. 언제 또 만날지 모르이칸에 이왕 만낸 짐에 저 송아지 뺄갱이나 이 갈밭새가 사는 조마이섬 이바구나 좀 하지요."
그러곤 정신을 가다듬기나 하듯이 앞에 놓인 술잔을 훌쩍 비웠다. 건우 할아버지와 윤춘삼 씨가 들려준 조마이섬 이야기는 언젠가 건우가 써냈던 <섬 얘기>에 몇 가지 기막히는 일화가 붙은 것이었다.
"우리 조마이섬 사람들은 지 땅이 없는 사람들이요. 와 처음부터 없기싸 없었겠소마는 죄다 뺐기고 말았지요. 옛적부터 이 고장 사람들이 젖줄같이 믿어 오던 낙동강 물이 맨들어준 우리 조마이 섬은―."
건우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개탄조로 나왔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 자기들 것이라고 믿어 오던 땅이 자기들이 겨우 철 들락말락할 무렵에 별안간 왜놈의 동척 명의로 둔갑을 했더란 것이었다.
"이완용이란 놈이 '을사 보호 조약'이란 걸 맨들어 낸 뒤라 카더만!"
윤춘삼 씨의 퉁방울 같은 눈에도 증오의 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1905년 ― 을사년 겨울, 일본 군대의 포위 속에서 맺어진 '을사 보호 조약'이란 매국 조약을 계기로, 소위 '조선 토지 사업'이란 것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던 일, 그리고 이태 후인 정미년에 가서는 "한국 정부는 시정 개선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수할 사"란 치욕적인 조목으로 시작된 '한일 신협약'에 따라, 더욱 그 사업을 강행하고 역둔토(驛屯土)의 대부분과 삼림 원야(森林原野)들을 모조리 국유로 편입시키는 등 교묘한 구실과 방법으로써 농민으로부터 빼앗은 뒤, 다시 불하하는 형식으로 동척과 일인 수중에 옮겨 놓던 그 해괴 망측한 처사들이 문득 내 머리 속에도 떠올랐다.
"쥑일 놈들."
건우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다시 국회 의원, 다음은 하천 부지의 매립 허가를 얻은 유력자……이런 식으로 소유자가 둔갑되어 간 사연들을 죽 들먹거리더니,
"이 꼴이 되고 보니 선조 때부터 둑을 맨들고 물과 싸워 가며 살아온 우리들은 대관절 우찌 되는기요?"
그의 꺽꺽한 목소리에는, 건우가 지각을 하고 꾸중을 듣던 날 "나릿배 통학생임더."하던 때의, 그 무엇인가를 저주하듯한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그들의 땅에 대한 원한이 컸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섬 사람들도 한 번 뻗대 보시지요?"
이렇게 슬쩍 건드려 봤더니, 이번엔 윤춘삼 씨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선생님은 그런 걸 잘 알면서 그러네요. 우리 겉은 기 멀 알며, 무슨 힘이 있습니꺼. 하도 하는 짓들이 심해서 한 분 해 보기는 해 봤지요. 그 문딩이떼를 싣고 왔일 때 말임더……."
윤춘삼 씨는 그 때의 화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듯이 남은 술을 꿀꺽 들이켰다.
"쥑일 놈들!"
마치 그들의 입버릇인 듯 되어 있는 이 말을 안주처럼 되씹으며 윤춘삼 씨는 문둥이들과 싸운 얘기를 꺼냈다.
― 큰 도둑질은 언제나 정치하는 놈들이 도맡아 놓고 한다는 게 서두였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동포애니 우리들의 현 실정이 어떠니를 앞세우겠다! 그 때만 해도 불쌍한 문둥이들에게 살 곳과일거리를 마련해 준다면서 관청에서 뜻밖에 웬 문둥이들을 몇 배 해 싣고 그 조마이섬을 찾아왔더란 거다. 그야말로 섬 사람들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미는 격으로 ― 옳아, 이건 어느 놈의 엉큼순지는 몰라도 필연 이 섬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꿍심으로 우릴 몰아내기 위해서 한때 문둥이를 이용하는 거라고……누군가의 입에서부터 이런 말이 퍼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 섬 사람들뿐 아니라 이웃 섬 사람들까지 한둥치가 되어 그 문둥이떼를 당장 내쫓기로 했더란 거다.
상대방은 자다가 호박을 주운 격인 병신들인데 오자마자 그 꼴을 당하고 보니 어리둥절은 하였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 떠나갈 빼짱들은 아니었다. 결국 나가라니 못 나가겠느니 싸움이 벌어졌다.
"그 때 바로 이 갈밭새 부자가 앞장을 안 섰능기요. 어데, 그 때 문딩이한테 물린 자리 한 분 봅시더―."
윤춘삼 씨는 하던 말을 별안간 멈추고, 건우 할아버지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골동품 같은 마도로스 파이프를 뻑뻑 빨고만 있는 건우 할아버지의 왼쪽 팔을 억지로 걷어 올렸다. 나이에 관계없이 아직도 우악스러워 보이는 어깻죽지 바로 밑에 커다란 흉터가 하나 남아 있었다.
"한 놈이 영감 여길 어설피 물고 늘어지다가 그만 터졌거든!"
윤춘삼 씨는 자랑삼아 이야기를 이었다.
―그렇게 악을 쓰는 문둥이들에 대해서, 몽둥이, 괭이, 쇠스랑 할 것 없이 마구 들이대고 싸웠노라고. 그래서 이쪽에서도 물론 부상자가 났지만, 괜히 문둥이들이 많이 상하고 덕택에 자기와 건우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많은 섬 사람들이 그야말로 문둥이떼처럼 줄줄이 경찰에 붙들려 가고……그러나 뒷일이 영 켕겼던지 관청에서는 그 '기막힌 동포애'를 포기하고 그 문둥이들을 도로 싣고 갔다는 얘기였다.
"그 바람에 저 사람은 육이오 때 감옥살이 또 안 했능기요. 머 예비 검거라 카드나……."
건우 할아버지가 이렇게 한 마디 끼우니,
"그거는 송아지 때문이라 캐도……."
"누명을 써도 문딩이 뺄갱이는 되기 싫은 모양이제? 송아지 뺄갱이는 좋고."
건우 할아버지의 이런 농에는 탓하지 않고서,
"그런 짓들 하다가 결국 그것들이 안 망했나."
윤춘삼 씨는 지금도 고소한 듯이 웃었다.
"다른 패들이 나와도 머 벨 수 있더나?"
건우 할아버지는 내처 같은 표정을 하였다.
"그놈이 그놈이란 말이지? 입으로만 머니머니 해댔지, 밭 맨드라 카니 제우(겨우) 맨들어 논 강뚝이나 파헤치고, 나리(나루) 막는다 카면서 또 섬이나 둘러마실라카이……."
윤춘삼 씨도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선생님!"
건우 할아버지가 별안간 그 그로테스크한 얼굴을 내게로 돌렸다.
"우리 거무란 놈 말을 들으니 선생님은 글을 잘 씬다 카데요? 우리 섬에 대한 글 한 분 써 보이소. 멋지기! 재밌실 낌데이. 지발 그 썩어 빠진 글을랑 말고……."
"썩어 빠진 글이라뇨?"
가끔 잡문 나부랑이를 써 오던 나는 지레 찌릿해졌다.
"와 그 신문 같은 데도 그런 기 수타(많이) 난다 카데요. 남은 보릿고개를 못 냉기서 솔가지에 모가지들을 매다는 판인데, 낙동강 물이 파아랗니 푸르니 어쩌니…… 하는 것들 말임더."
갈밭새 영감이 이렇게 열을 내기 시작하자, 곁에 있던 윤춘삼 씨가,
"허허이 우리 선생님이 오늘 잘못 걸?네요. 이 영감이 보통이 아임데이. 그래도 선배의 씨라꼬……."
핀잔 비슷이 말했지만, 건우 할아버지는 벌인 춤이 되어 버렸다.
"하기싸 시인들이니칸에 훌륭하겠지. 머리도 좋고……선생도 시인 아입니꺼. 그런데 와 우리 농사꾼이나 뱃놈들의 이바구는 통 안 씨는기요? 추접다꼬? 글 베린다꼬 그라능기요?"
입이 말을 한다기보다 차라리 수염이 떨어 댄다고 느껴질 정도로, 건우 할아버지는 열을 냈다.
"그만하소. 영감이 머 글이나 이르능기요. 밤낮 한다는 기 '곡구롱 우는 소리'지. 어데 그기나 한 분 해 보소."
윤춘삼 씨가 또 참견을 했다.
"곡구롱 우는 소리라뇨?"
나도 윤씨의 그 말에 귀가 쏠렸다. 어떤 고시조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데, 해 보소. 모초럼 선생님을 모신 자리니."
하는 윤춘삼 씨의 말에, 그는 괜한 소리를 했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 꺽꺽한 목청에 느린 가락을 넣기 시작했다.
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니러 보니
작은 아들 글 이르고 며늘아기 베 짜는데 어린 손자는 꽃놀이한다.
마초아(마침)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 하더라.
건우 할아버지는 갑자기 침착해진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불렀다. 땀에 번지르르한 관자놀이 짬에 가뜩이나 굵은 맥이 한 줄 불쑥 드러나 보이기까지 하였다. 가락은 육자배기에 가까웠으나, 내용은 역시 내가 생각했던 오(吳) 아무개의 고시조였다.
"이 노래 하나만은 정말 떨어지게 잘한다 카이!"
윤춘삼 씨는 나 못지않게 감탄을 하면서 그가 그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연을 대강 이렇게 말했다. ― 그러니까 그의 증조부 되는 분이 옛날 서울에서 무슨 벼슬깨나 하다가 그놈의 당파 싸움에 휘말려서 억울하게 이곳 조마이섬으로 귀양인지 피신인지를 해 와 살았는데, 그 분이 살아 계실 때 즐겨 읊던 시조란 것이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새삼 생각되는 바가 있었다. 그 노래를 부를 때의 갈밭새 영감의 표정에, 은근히 누군가를 사모하는 듯한 빛이 엿보였을 뿐 아니라, 그 꺽꺽한 목청에도 무엇인가를 원망하는 듯, 혹은 하소하는 듯한 가락이 확실히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착각이 아니리라! 동시에 나는 아까 본 건우 군의 집 사립 밖에 해묵은 수양버들 몇 그루가 서 있던 광경이 새삼 기억에 떠오르고, 건우 어머니의 수인사 태도나 집안을 다스리는 범절이 어딘지 모르게 체통이 있는 선비 가문의 후예같이 짚어졌다.
"아드님은 육이오 때 잃으셨다지요?"
내가 술을 한 잔 더 권하며 위로 삼아 물으니까,
"야……. 큰놈은 그래서 빼도 못 찾기 되고 작은놈은 머 사모아 섬이라 카던기요, 그곳 바닷속에 너어(넣어) 버릿지요."
"사모아 섬?"
나는 그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했다.
"야, 삼치잡이 배를 탔거던요……."
이러고 한숨을 쉬는 건우 할아버지의 뒤를 곁에 있던 윤춘삼 씨가 또 받아 이었다.
"와 언젠가 신문에도 짜다라(많이) 안 났던기요. '허리켄'인가 먼가 하는 폭풍을 만내 시운찮은 우리 삼칫배들이 마구 결단이 난 일 말임더."
나도 건우 할아버지도 더 말이 없는데, 윤춘삼 씨가 혼자 화를 내듯,
"낙동강 잉어가 띠이 정지(부엌) 바닥에 있던 부지깽이도 띤다 카듯이, 배도 남 씨다가(쓰다가) 베린 걸 사 가주고 제북(제법) 원양 어업인가 먼가 숭(흉)내를 낼라 카다가 배만 카에는 사람들까지 떼죽음을 안 시킷능기요. 거에다가(게다가) 머 시체도 몬 찾았거이와 회사가 워낙 시원찮아 노오니 위자료란 기나 어디 지데로 나왔능기요. 택도 앙이지 택도 앙이라!"
"없는 놈이 할 수 있나. 그저 이래 죽고 저래 죽는 기지머!"
갈밭새 영감은 이렇게 내뱉듯이 해 던지고선, 아까부터 손 안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던 두 알의 가래 열매를 별안간 세차게 달가닥대기 시작했다. 마치 그렇게라도 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기나 하려는 듯이. 어찌 들으면 남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그 딱딱한 소리가, 실은 어떤 깊은 분노의 분출을 억제하는 그의 마음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따그르르 따그르르하는 그 소리가, 바로 나룻가 갈밭에서 요란스럽게 들려 오는 진짜 갈밭새들의 약간 처량스런 울음소리와 흡사하다 느꼈다.
한편 또 조마이섬의 갈밭 속에서 나고 늙어 간다는 데서 지어졌으리라 믿어 왔던 갈밭새란 별명에, 어쩜 그가 즐겨 굴리는 그 가래 소리가 갈밭새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데 연유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갓나온 듯한 흰 부나비 두 마리가 갈팡질팡 희미한 전등에 부딪칠 뿐이었다. 파닥거리는 소리도 없이.
그러고 두어 달이 지났다.
낙동강 물이 몇 차례 불었다 줄었다 하는 동안에 그 해 여름도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갈대도 이젠 길길이 자라서, 가뜩이나 섬 사람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갈밭새들이, 더욱 깃들기 좋을 만큼 우거진 무렵이었다.
아침 저녁 그 속에서 갈밭새들이 한결 신나게 따그르르 다끄르르 지저귀어 대면 머잖아 갈목도 빠져 나온다 한다. 물론 학교도 방학이 끝날 무렵이다. 건우는 그 동안 그 지긋지긋한 지각 걱정을 안 해도 좋았다. 한나절이면 그야말로 물거미처럼 물 위를 동동 떠다녀도 무방했다. 아닌게 아니라 한여름 동안 얼마나 물과 볕에 그을었는지, 마지막 소집날에 나타난 건우의 얼굴은, 사시장춘 바다에서 산다는 즈 할아버지 못잖게 검둥이가 되어 있었다.
"어지간히 그을었구나. 할아버지와 어머니도 잘 계시니?"
늦게까지 어름거리는 그를 보고 일부러 물어 봤더니,
"예, 수박 자시러 오시라 캅디더."
어머니의 전갈일 테지, 딴소리까지 했다. 까막딱지가 묻힐 정도로 새까매진 얼굴이라 이빨이 유난히 희게 빛났다.
"집에서 수박을 심었던가?"
"예, 언제쯤 오실랍니꺼?"
숫제 다그쳐 묻는 것이었다.
"글쎄 언제 한 번 가지."
"꼭 모시고 오라 카던데요?"
"그래, 오늘은 안 되고, 여가 봐서 한 번 갈 테니까."
나는 그의 좁다란 어깨를 툭 쳐 주며 돌려보냈다. 처서가 낼 모레니까 수박도 한물 갈 때리라. 이왕이면 처서께쯤 한번 가 볼까 싶었다.
그런데 공교히도 그 처서날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곡식도 준다는 하필 그날에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내가 건우네 집으로 가고 안 가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경험과 속담 속에 살아온 농촌 사람들의 찌푸려질 얼굴들이 먼저 눈에 떠올랐다.
게다가 이건 이른바 칠팔월 긴 장마가 아니라, 하루 이틀, 그러다가 사흘째부터는 바로 억수로 변해 가더니 마침내 광풍까지 겹쳐서 온통 폭풍우로 바뀌고 말았다. 60년 이래 처음이니 뭐니 하고 떠드는 라디오나 신문들의 신나는 듯한 표현들은 나중에 있은 얘기고, 아무튼 그날 새벽에는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뒤흔들리기나 하듯이 우레 번개가 잦고 비바람이 사나웠다.
이렇게 되면 속담 말로 '칠월 더부살이 주인 마누라 속곳 걱정' 정도의 장마 경황이 아니다. 더부살이도 우선 제 살 구멍 찾기가 급하다. 반면 제 한 몸이나 제 집구석에 별탈만 없으면 남의 불행쯤은 오히려 구경 삼아 보아 넘기는 게 도회지 사람들의 버릇이다.
한창 천지가 진동하던 몇 시간 동안은 옴쭉달싹도 않던 사람들이, 비가 좀 뜨음하니까 사립 밖으로 개울가쯤 나가면 족하지만, 어른들은 그 정도로서는 한에 차질 않는다.
"낙동강이 넘는다지?"
"구포 다리가 우투룹단다!"
가납사니 같은 도시 사람들은 제멋대로 그럴싸한 소문을 퍼뜨리며, 소위 물 구경에 미쳐서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산으로 올라들갔다. 내가 집을 나선 것은 반드시 그런 호기심에서만은 아니었다. 다행히 하단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통한다기 얼른 그것을 집어 탔다. 군데군데 시뻘건 뻘물이 개울을 이루고 있는 길을, 차는 철버덕 철버덕 기어 가듯 했다. 대티 고개서부터 내 눈은 벌써 김해들을 더듬었다.
"저런……!"
건우네 집이 있는 조마이섬 일대는 어느덧 벌건 홍수에 잠겨 가고 있지 않은가! 수박이 문제가 아니다. 다시 흩날리기 시작하는 차창 밖의 빗속을 뚫고서, 내 시선은 잘 보이지도 않는 조마이섬 쪽으로 얼어붙었다. 동시에 "나릿배 통학생임더!" 하던 건우 군의 가냘픈 목소리가 갑자기 귀에 쟁쟁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고개 넘어서부터 차는 더욱 끼우뚱거렸다. 논두렁을 밀고 넘어오는 물살이 숫제 쏴하는 소리까지 내면서 길을 사뭇 덮었다. 때로는 길과 논밭이 얼른 분간이 안 되어, 가로수를 어림해서 달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차 안의 손님들은 한층 더 떠들어 댔다. 대부분이 무슨 사연들이 있어서 가는 사람들이었겠지만, 그러한 사연들보다 우선 눈앞의 사정에 더욱 정신을 파는 것 같았다.
하단 나루께는 이미 발목물이 넘었다. '사라호'에 데인 경험이 있는 그곳 주민들은, 잽싸게 이불이랑 세간 부스러기를 산으로 말끔 옮겨 놓았고, 부랴부랴 끌어올린 목선들이 여기저기 나둥그러져 있는 길 위에는, 볼멘소리를 내지르는 아낙네와 넋 잃은 듯한 사내들이 경황 없이 서성거릴 뿐이었다.
물론 나룻배가 있을 리 없었다. 예측 안 한 바는 아니지만, 행여나 싶었던 마음에도 실망은 컸다. 배 없는 나루터를 비롯해서 가까운 강가에는, 경비를 나온 듯한 소방대원 같은 복장의 사람들과 순경 한 사람이 버티고 있었다. 아무리 가까이 오지 마라, 혹은 가지 말라 외쳐도 사람들은 들은 체 만 체했다. 물이 점점 더 붇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밀려오는 강물만 맥없이 바라보았다. 어느 산이라도 뒤엎었는지 황토로 물든 물굽이가 강이 차게 밀려 내렸다. 웬만한 모래톱이고 갈밭이고 남겨 두지 않았다.닥치는 대로 뭉개고 삼킬 따름이었다. 그러고도 모자라는 듯 우르르하는 강울림 소리는 더욱 무엇을 노리는 것같이 으르렁댔다.
둑이 넘을 정도로 그악스럽게 밀려 내리는 것은 벌건 물굽이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들녘들을 휩쓸었는지, 보릿대랑 두엄더미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흘러내리는가 하면, 수박이랑, 외, 호박 따위까지 끼리끼리 줄을 지어 떠 내려왔다. 이상스런 것은 그러한 것들이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강 한가운데로만 줄을 지어 지나가는 것이었다.
"쳇, 용케도 피해 간다!"
저만큼 떨어진 데서 장대 끝에 접낫을 해 단 억척보두들이 둥글둥글한 수박의 행렬을 향해 군침들을 삼켰다.
"그까진 수박은 껀지서 머할라꼬? 하불실 돼지 새끼라도 아담아 내야지?"
이런 농지거리도 들렸다. 역시 접낫을 해 든 주제에, 이들은 그저 물 구경을 나온 것이 아니라, 그런 가운데서도 엄연히 생활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대담한 태도와 농담에 잠깐 정신을 팔다가, 다시 조마이섬이 있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부슬비가 계속 광풍에 흩날리고 있었다. 얼핏 홍적기(洪積期)를 연상케 하는 몽롱한 안개비 속이라, 어디가 어딘지 분별할 도리가 없었다.
'건우네 집은 벌써 홍수에 잠기지나 않았을까?'
불안한,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들기 시작했다.
"물이 이 정도로 불어나면 건너편 조마이섬께는 어찌 되지오?"
생면 부지한 접낫패들에게 불쑥 묻기까지 하였다.
"조마이섬?"
돼지 새끼를 안아 내겠다던 키다리가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맹지면에서는 땅이 조금 높은 편이라카지만, 물이 이래 불으면 마찬가지지요. 만약 어제 그런 소동이 안 일어났이문 밤새 무슨 탈이 났을지도 모를 끼요."
"어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가요?"
나는 신경이 별안간 딴 곳으로 쏠렸다.
"있다 뿐이라요? 문딩이 쫓아낼 때보다는 덜했겠지마 매립(埋立)인강 먼강 한답시고 밀가리만 잔득 띠이 처먹고 그저 눈가림으로 해 놓은 둘(둑)을 섬 사람들이 우 대들어서 막 파헤쳐 버리고, 본래대로 물길을 티놨다 카드만요. 글 안 했으문……."
키다리는 혼자서 신을 내가며 떠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게. 괜히 혼날라꼬."
곁에 있던 약삭빠른 얼굴의 사내가 이렇게 불쑥 쏘아 붙이듯 하더니, 마침 저만큼 떠 내려오는 널빤지를 향해 잽싸게 접낫을 던졌다. 그러나 걸리진 않았다. 그렇게 허탕을 친 게 마치 이쪽의 잘못이나 되는 듯,
"조마이섬에 누가 있소?"
내뱉듯한 소리가 짐짓 퉁명스러웠다.
"건우란 학생이 있어서……."
나는 일부러 학생의 이름까지 대보았다. 약삭빠른 눈초리가 다시 물굽이만 쏘아 보고 말이 없으니까, 또 키다리가,
"그 아이 아배가 누군교?"
하고 나를 새삼 쳐다보았다.
"아버진 없고, 즈 할아버지 별명이 갈밭새 영감이라더군요."
나는 건우 할아버지의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아, 그렁기요? 좋은 노인임더."
키다리는 접낫대를 세워 들더니,
"조마이섬의 인물 아잉기요. 어지(어제) 아침 이곳에 지내갔는데, 그 뒤 대강 알아 봤거든……. 가고 난 뒤 얼마 안 되서 그 일이 났단 말이여."
말머리가 어느덧 자기들끼리로 돌아갔다. 나는 굳이 파고 묻지 않았다. 그 때 마침 판잣집 용마루 비슷한 길다란 나무가 잠겼다 떴다 하며 떠내려가자, 조금 떨어진 신신 바위 짬에서 별안간 쬐깐 쪽배 하나가 쏜살같이 나타나더니, 기어코 그놈에게 달라붙어서 한참 파도와 싸우며 흐르다가 마침내 저 아래쪽 기슭에 용케 밀어다 붙였다. 박수를 치기보다는 모두 숨을 죽이고 바라보기만 했다. 용감하다기보다 차라리 처참한 광경이었다.
나는 거기서 누구에게도 보장을 받아 오지 못한 절박한 생활을 읽었다. 한 표의 값어치로서가 아니라, 다만 살기 위해서 스스로 죽을 모험을 무릅쓰는 그러한 행위는, 부질없이 그것을 경계하거나 방해하는 힘을 물리침으로써만 오히려 목숨 그 자체를 이어 갈 수 있다는 산 증거 같기도 했다.
'갈밭새 영감이나 송아지 뺄갱이도 그냥 있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조마이섬의 일이 불현듯 더 궁금해져서 이내 구포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다리만 건너면 조마이섬에 가까이까지 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구포 다릿목에서 차를 내렸으나 물은 이미 위험 수위를 훨씬 돌파해서, 다리는 통금이 돼 있었다. 비상 경계의 붉은 깃발이 찢어질 듯 폭풍우에 펄럭이고, 다릿목을 건너지른 인줄 곁에는 한국인 순경과 미군이 버티고 있었다. 무거워 보이는 고무 비옷에 철모를 푹 눌러 쓰고 방망이를 해 든 포옴이 여간 엄중해 뵈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슨 핑계들을 꾸며 대고 용케 건너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러는 다리 위에서 유유히 물 구경을 하는 사람들도. 나도 간신히 그들 틈에 끼었다. 우르르르하는 강울림은 다리 위에서 듣기가 한결 우람스러웠다.
통행 금지의 팻말이 서 있어도, 수해 시찰을 나온 듯한 새까만 관용차만은 사뭇 물을 튀기며 지나갔다. 바람이 휘몰아칠 때는 거기에 날리기나 하듯이 더욱 빨리 지나갔다. 요컨대 일종의 모험이기도 했으리라. 안에 타고 있는 얼굴들은 알 길이 없었지만 어련히 심각한 표정들을 했으랴 싶었다.
내려다봄으로 해서 한결 사나운 물굽이가 숫제 강을 주름잡 듯 둘둘 말려 오다간, 거의 같은 지점에서 쏴아하고 부서졌다. 그럴 때마다 구슬, 아니 퉁방울 같은 물거품이 강 위를 휘덮고 때로는 바람결을 따라서 다리 위까지 사뭇 퉁겼다. 그러한 강 한가운데를 잇달아 줄을 지어 떠 내려오는 수박이랑 두엄더미들이, 하단서 볼 때보다 훨씬 많았다. 말하자면 일종의 장관에 가까웠다.
"아까 그 송아지는 정말 아깝던데……."
이런 뚱딴지 같은 소리도 푸득 귓가를 스쳐 갔다.
조마이섬이 있는 먼 명지면 짬은 완전히 물바다로 보였다. 구름을 이고 한가하던 원두막들은 다시 찾아볼 길이 없고, 길찬 포플러나무들도 겨우 대공이만은 남은 듯, 바람에 누웠다 일어났다 했다.
지루하게 긴 다리를 지루하게 건너, 물구경 나온 인파를 헤치고 강둑길을 얼마 못 갔을 때였다. 뜻밖에 거기서 윤춘삼 씨와 마주쳤다. 헐레벌떡 빗속을 뛰어오던 송아지 뺄갱이―, 아니 윤춘삼 씨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물에서 막 건져 올린 사람처럼 젖어 있었다. 하긴 내 꼴도 그랬을 테지만.
"우짠 일인기요?"
하고 덥석 내 손을 검잡는 윤춘삼 씨는, 그저 반갑다기보다 숫제 고마워하는 기색까지 보였다.
"조마이섬은 어찌 됐소?"
수인사란 게 이랬더니,
"말 마이소. 자, 저리 가서 이야기나 합시더. ……"
그는 나를 도로 다릿목 쪽으로 끌었다.
"아니, 섬 쪽으로 가 보려 했는데요?"
"가야 아무것도 없소. 모두 피난소로 옮기고, 남은 건 물바다뿐임더. 우짤라꼬 이 놈의 하늘까지! ……"
별안간 또 한 줄기 쏟아지는 비도 피할 겸 윤춘삼 씨는 나를 다릿목 어떤 가겟집으로 안내했다. 언젠가 하단서 같이 들렀던 집과 거의 비슷한 차림의 주막집이었다. 둘 사이에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너무나 다급하고 또 수다한 말들이 두 사람의 입을 한꺼번에 봉해 버렸다 할까!
"건우네 가족도 무사히 피난했겠지요?"
먼저 내 입에서 아까부터 미뤄 오던 말이 나왔다.
"야……."
해 놓고도 어쩐지 말끝이 석연치 않았다.
"집들은 물론 결단이 났겠지만, 사람은 더러 상하진 않았던가요?"
나는 이런 질문을 해 놓고, 이내 후회했다. 으레 하는 빈걱정 같아서.
"집이고 농사고 머 있능기요. 다행히 목숨들만은 건졌지만, 그 바람에 갈밭새 영감이 또 안 끌려갔능기요."
윤춘삼 씨는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건우 할아버지가?"
나는 하단서 그 접낫패에게 얼핏 들은 얘기를 상기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경찰서꺼정 갔다 오는 길인데, 마침 잘 만냈임더. 글 안 해도……."
기진 맥진한 탓인지, 그는 내가 권하는 술잔도 들지 않고 하던 이야기만 계속했다. 바로 어제 있은 일이었다. 하단서 들은 대로 소위 배짱들이 만들어 둔 엉터리 둑을 허물어 버린 얘기였다.
― 비는 연 사흘 억수로 쏟아지지, 실하지도 않은 둑을 그대로 두었다가 물이 더 불었을 때 갑자기 터진다면 영락없이 온 섬이 떼죽음을 했을 텐데, 마침 배에서 돌아온 갈밭새 영감이 선두를 해서 미리 무너뜨렸기 때문에 다행히 인명에는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와 건우 할아버진 끌고 갔느냐고요?"
윤춘삼 씨는 그제야 소주를 한 잔 훅 들이키고 다음을 계속했다. ― 섬 사람들이 한창 둑을 파헤치고 있을 무렵이었다. 좀더 똑똑히 말한다면, 조마이섬 서쪽 강 둑길에 검정 지프차가 한 대 와 닿은 뒤라 한다. 웬 깡패같이 생긴 청년 두 명이 불쑥 현장에 나타나더니, 둑을 허물어뜨리는 광경을 보자, 이내 노발대발 방해를 하기 시작하더라고. 엉터리 둑을 막아 놓고 섬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던 소위 유력자의 앞잡인지 뭔지는 모르되, 아무리 타일러도, "여보, 당신들도 보다시피 물이 안팎으로 이렇게 불어나는데 섬 사람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오?" 해 봐도, 들어 주긴커녕 그 중 힘깨나 있어 보이는, 눈이 약간 치째진 친구가 되레 갈밭새 영감의 괭이를 와락 뺐더니 물 속으로 핑 집어 던졌다는 거다.
그리곤 누굴 믿고 하는 수작일 테지만 후욕패설(욕설, 육두문자)을 함부로 뇌까리자,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을 갈밭새 영감도,
"이 개 같은 놈아, 사람의 목숨이 중하냐, 네 놈들의 욕심이 중하냐?"
말도 채 끝내기 전에 덜렁 그 자를 들어 물 속에 태질(세게 메어치거나 내던지는 짓)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상대방은 "아이고"소리도 못해 보고 탁류에 휘말려 가고, 지레 달아난 녀석의 고자질에 의해선지 이내 경찰이 둘이나 달려왔더라고.
"내가 그랬소!"
갈밭새 영감은 서슴지 않고 두 손을 내밀었다는 거다. 다행히도 벌써 그 때는 둑이 완전히 뭉개지고, 섬을 치덮던 탁류도 빙 에워 돌며 뭉그적뭉그적 빠져 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 조마이섬을 지키다시피 해 온 영감인데……, 살인죄라니 우짜문 좋겠능기요?"
게까지 말하고 나를 쳐다보는 윤춘삼 씨의 벌건 눈에서는 어느덧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법과 유력자의 배짱과 선량한 다수의 목숨……. 나는 이방인(異邦人)처럼 윤춘삼 씨의 컁컁한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폭풍우는 끝났다. 60년래 처음이니 뭐니 하고 수다를 떨던 라디오와 신문들도 이젠 거기에 대해선 감쪽같이 말이 없었다. 그저 몇몇 일간 신문의 수해 구제 의연란에 다소의 금액과 옷가지들이 늘어 갈 뿐이었다.
섬 사람들의 애절한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60이 넘는 갈밭새 영감은 결국 기약 없는 감옥살이로 넘어갔다.
그리고 9월 새 학기가 되어도 건우 군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일기장에는 어떠한 글이 적힐는지.
황폐한 모래톱 ― 조마이섬을 군대가 정지(땅을 반반하고 고르게 만듦)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 1966년 9월 『문학』에 발표된 단편소설
[ 작품 해설 ]
작가 김정한이 1943년 절필한 이래 20여 년 가까이 침묵을 지키다가,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복귀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 작품은 낙동강 모래가 쌓여서 이루어진 조그만 섬이 소설의 무대를 이룬다. 이 섬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총독부 권력에 의해 수탈당한 비극적 역사를 지니고 있다. 농민층에 대한 수탈은 일제시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광복 후에도 지속된다. 주민들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이리저리 빼앗기고만 살아온 것이다.
이 섬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농민들의 갈등은 홍수를 계기로 하여 폭발된다. 섬 주민들은 홍수가 나자 둑을 파괴하려 한다. 이것을 제지하는 유력자의 앞잡이가 나타나자, 건우 할아버지는 이 깡패를 물 속에 던져 버린다. 섬사람들을 홍수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둑을 무너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없는 이 농민은 오히려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붙들려간다. 이 작품은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는 중심인물이 투옥됨으로써 농민들의 요구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농촌 현실의 모순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특히, “이 땅이 이곳 사람들의 땅 아니랬지? 멀쩡한 남의 농토까지 함께 매립허가를 얻은 어떤 유력자의 것이라고 하잖았어? 그러나 두구봐. 언젠가는 이 땅의 주인인 너희들의 것이 될 거야”라는 주인공의 말은 역사에 대한 신뢰와 미래의 전망에 의한 것이기에 더욱 예술적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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