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87km 셀마 대행진>
흑인인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서 킹과 셀마 대행진 이야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꾼 87km 셀마 대행진>은 미국 인종 차별의 역사를 비롯하여, 흑인 인권 개선을 위해 1965년 3월 7일 미국 셀마에서 6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시작으로 출발했으나 1965년 3월 25일 25,000명으로 늘어나 몽고메리까지 이른 평화 행진을 다루고 있다.
<세상을 바꾼 87km 셀마 대행진> 요약
- 갈수록 심해지는 흑백 차별
1865년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됐음에도 흑백 차별은 여전했다. 1876년에는 '짐 크로 법'을 만들어 흑백 차별을 본격화했다.
흑백 분리 정책으로 인해 흑인은 백인이 있는 학교, 교회, 식당, 호텔 등에 갈 수 없었고 공공 세면기, 거리의 음료대조차 백인용과 유색인용이 따로 설치되었다.
버스도 흑인과 백인의 자리가 분리되어 있어 버스에 오를 때 백인은 앞문, 흑인은 뒷문을 이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 셀마 대행진이 시작된 계기와 그 과정
흑인들은 차별에 저항해 보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인종차별을 허용한 법과 제도는 꼬리표처럼 흑인들을 계속해서 뒤따랐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흑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반영해 줄 대표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흑인에게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임을 인식하게 된다.
물론 당시 흑인들도 유권자 등록만 하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었으나 유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세인 '인두세'를 내야 해 가난한 백인과 대다수 흑인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더군다나 유권자 등록 신청 시간은 짧았고 등록을 해도 문해 시험, 구술시험(면접) 등을 봐야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흑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투표권을 가질 수 없었다. 설령 힘들게 투표권을 얻는다 해도 KKK단 같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끊임없이 협박하여 투표를 포기하도록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SNCC 소속이었던 버나드와 콜리아가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흑인의 유권자 등록 운동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시민의 권리에 대해 설명했으며 유권자 등록을 위한 교실을 열고, 고등학교에서 흑인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그러나 차별이 만연한 현실에서 버나드와 콜리아의 이야기는 꿈만 같았고 흑인 중에서도 반감을 갖는 이들이 있었으며 백인들에게 비난받기 일쑤였다.
버나드는 셀마의 보안관 클라크에게 부랑죄로 체포되기도 했고, 거리에서 두 백인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버나드는 한 달 동안 피투성이가 된 셔츠를 입고 다니며 더욱 열심히 활동했으며, 차츰 흑인들도 함께하게 되었다.
1964년 여름에는 수백 명의 흑인들이 유권자 등록 사무소 앞에 줄을 서게 되었고, 여러 가지 압력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의 유권자 등록 요구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시민운동가들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셀마로 초청했다.
킹 목사의 연설 후 흑인 교사들은 행진을 시작했으며 많은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킹 목사는 경찰에 체포되고 매일 학생들이 경찰의 몽둥이에 맞아 끌려갔다. 이렇듯 셀마의 시위가 악화되자 전국의 여론도 끓어오르고 시위 또한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던 중 26세의 지미 리 잭슨이 시위에 함께 참여한 어머니를 보호하려다 총격을 받고 숨지게 된다. 시민들은 주지사 조지 윌리스에게 이 청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규명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흑인 차별 발언을 했다.
결국 1965년 3월 7일 6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셀마에서 앨라배마 주도인 몽고메리를 향해 출발하였다. 이 행진대에는 학생, 노인, 여성, 장애인뿐만 아니라 백인들까지도 합류했는데. 이들은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구호를 외치지도 않고 묵묵히 걸었다.
하지만 군대가 최루탄을 쏘고 기마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하는 등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날을 가리켜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셀마의 시위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나,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무차별한 공격에 제임스 리브 목사가 죽는 등 폭력과 피로 얼룩졌다.
- 셀마 대행진의 결과, 그 후 이야기
셀마 행진을 가로막는 이들의 소식은 미국 전역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여러 지역에서 셀마 시민들에 동조하는 행진이 시작되었다.
1965년 3월 21일 세 번째 행진이 진행되었고 3,200명의 사람이 몽고메리에 위치한 주지사 집무실로 행진하여 25일 마지막 날에는 25,000명으로 늘어났다.
마지막까지 월리스 주지사는 행진대와 만남을 거부했지만,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마지막 연설을 끝으로 모인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행진은 끝을 맺는다.
안타깝게도 KKK단의 총격으로 행진 대원들을 위해 봉사했던 백인 여성이 죽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1965년 8월 6일 존슨 대통령이 '투표권 법안'에 서명하여 흑인들은 비로소 정당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세상은 조금씩 변해 2000년에는 셀마 시에서 최초로 흑인시장 제임스 퍼킨스가 선출되었다.
궁극의 비극은
나쁜 사람들의 억압과 잔인함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다.
- 마틴 루서 킹 목사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주에서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 마틴 루서 킹의 1963년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중에서
▷인종 차별을 이겨낸 세 명의 흑인 여성의 실화 다룬 <히든 피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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