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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글/시 한편의 여유

[인생시] 조창환 시인 '당신이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

by 늘해나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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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네일 이미지

 

 

당신이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

 

-조창환

 

 

나팔꽃 새순 돋아

허공에서 길 찾는 거 보셨수?

뾰족한 끄트머리가

아침 이슬 어루만지는 거 참 신기하쥬?

 

아직 눈 안 뜬 두 이레 강아지

꼬물거리는 거 보셨수?

보드랍고 연하고 따뜻하쥬?

 

당신 손녀딸 애깃적

젖니 돋아나는 거 보셨수?

말랑한 얼굴에 하얀 이 돋아

방긋 웃는 거 참 이쁘쥬?

 

그 애기 좀더 커서 벚꽃 잎 하르르

흩어져 떨어지는 거 보면서

춤추는 발레리나 같다고

말하는 거 보면 짜릿하쥬?

 

그게 당신이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이유.

 

자고 깨면 사람들은

전염병 걱정으로 가득 차

입 가리고 코 가리고

서로 경계하고 눈치 보며 피할 때

 

집에 일찍 들어가

당신 마누라 작고 못생긴 발

씻겨줘 보슈.

가슴 한 구석에 애틋하고

아릿한 덩어리가 느껴지쥬?

 

그게 당신이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이유.

 

 

시 내용 일부가 들어간 이미지

 

 

▷ 시 해설과 감상

 

인물 사진을 잘 찍는 예술가로 알려진 조세현 작가는 잠시 뒤를 돌아보며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행복을 발견하라고 합니다. 살면서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는 게 여간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앞으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계속 앞만 보고 달리다가 한두 번 넘어져 다치게 되면 그제서야 호흡을 가다듬고 지난날을 돌아다보게 됩니다. 멈추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나와 만나게 됩니다. 그때 놓치고 지나갔던 소중한 것들이 다가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조창환 시인은 우리가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에 대하여 친절하게, 재미있는 충청도 방언으로 안내해 줍니다.

 

사는 것이 참 막막하고 앞이 캄캄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시인이 일러주는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거창한 게 아닙니다. “나팔꽃 새순 돋아 허공에서 길 찾는 거, 아직 눈 안 뜬 두 이레 강아지 꼬물거리는 거, 손녀딸 애깃적 젖니 돋아나는 거” 등등.

 

어쩌면 별 거 아닌 걸로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삶의 빛나는 보석이지요.

 

하얗게 꽃이 핀 벚꽃나무
"애기 좀더 커서 벚꽃 잎 하르르 흩어져 떨어지는 거 보면서 춤추는 발레리나 같다고 말하는 거 보면 짜릿하쥬?"

 

시의 후반부에서 시적 화자는 “당신 마누라 작고 못생긴 발”을 씻겨 보라고 합니다. 살면서 배우자의 발을 씻겨 본 적이 있던가요. 손이나 얼굴도 씻기기 힘든데 그것도 발이라니.

 

하루 종일 고단하게 몸을 끌고 다닌 발에는 땀냄새가 배여 있습니다. 몸의 가장 낮은 부위이자 고약한 냄새가 나는 부위를 씻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평생을 동고동락해 온 아내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합니다. 만약 실천할 수 있다면 감동 그 자체일 것입니다.

 

이제부터 가까이 소소한 것들을 살펴봐야겠습니다. 우선 마음을 씻고 나서 식구들의 발을 씻길 만큼 섬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그늘에서 양지바른 곳으로 이끌어 내는 힘, 그게 바로 시의 눈부신 에너지인 것 같습니다.

 

- 문현미 <명시 산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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