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대한 시 모음
처음 가는 길
-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굽이 돌아가는 길
- 박노해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진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길은 그렇게
- 김종상
두엄내 풍겨오는 들판을 지나
놀빛 고운 산마루를 기어 넘고
울멍줄멍 구름골짜기를 감돌아
길은 저 혼자서 가고 있었다.
물비린내 풍기는 갯벌을 따라
끝없이 설레는 물이랑을 누벼서
마파람 몰아오는 수평선 너머로
길은 쉬지 않고 가고 있었다.
애달픔처럼 먼 바다를 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나는
길을 따라, 길과 더불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항상 함께 다니는 나의 길.
세상의 길가
- 김용택
내 가난함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밥같이 하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 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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