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시 모음
이별노래
- 정호승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 가서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떠난 자리
- 나태주
나 떠난 자리
너 혼자 남아
오래 울고 있을 것만 같아
나 쉽게 떠나지 못한다, 여기
너 떠난 자리
혼자 남아
오래 울고 있을 것 생각하여
너도 울먹이고 있는 거냐? 거기.
떠나야 할 때를
- 나태주
떠나야 할 때는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잊어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다
우리는 잠시 세상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나의 흰 구름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너의 흰 구름
누군가 개구쟁이 화가가 있어
우리를 붓으로 말끔히 지운 뒤
엉뚱한 곳에 다시 말끔히
그려 넣어 줄 수는 없는 일일까?
떠나야 할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잊어야 할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한 나를 내가 안다는 것은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이별이 시작되던 날
- 용혜원
붙박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바닥이 보였다
우리를 촉촉이 적셔주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말라 버렸다
떠나고 싶다고 했다
사랑하면 붙잡아 달라고 했을 때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오랜 떠남이 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왜 아무런 말도 못했을까
봄날은 다시 오고 새로운 잎새들은
다시 돋아나는데
우리 사랑은 다시 돋아나지 않는다
설마 했을까
늘 넉넉하던 너의 마음이었기에
장난인 줄 알았을까
어느 날부턴가 소식도 없고
연락할 수도 없을 때 알았다
그날이 우리들의 이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이별법
- 류시화
사랑이 오실 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한 사람을 떠나보냅니다
비록 우리 사랑이 녹아내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각자의 길을 떠난다 해도
그래도 한때 행복했던 그 기억만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 이 사랑
그대가 주었던 슬픔은 모두 잊고
추억의 상자에서 꺼내어
아름다웠노라, 지극히도 아름다웠노라
회상할 수 있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우리 사랑이 이별로 남게 되어
지금은 견디기 힘든 아픔뿐일지라도
사랑이 오실 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그대를 떠나보냅니다
헤어지는 지금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로...
'마음챙김의 글 > 시 한편의 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시] 도종환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0) | 2022.05.22 |
---|---|
[길에 대한 시] 도종환 ‘처음 가는 길’ 외 4편 (0) | 2022.05.21 |
[사랑시 모음] ‘사랑의 물리학’ 외 5편 (0) | 2022.05.14 |
나태주 시인의 아버지에 대한 시 (0) | 2022.05.09 |
[짧고 좋은 시] 정지용 ‘호수’ 외 7편 (0) | 2022.05.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