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 오세영 시인
12월의 시
바람이 부네
살아 있음이 고맙고
더 오래 살아야겠네
나이가 들어 할 일은 많은데
짧은 해로 초조해지다
긴긴밤에 회안이 깊네
나목도 다 버리며
겨울의 하얀 눈을 기다리고
푸른 솔은 계절을 잊고
한결같이 바람을 맞는데
살아 움직이는 것만
숨죽이며 종종걸음치네
세월 비집고
바람에 타다
버릴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데
시간은 언제나 내 마음의 여울목
세월이여
이제 한결같은 삶이게 하소서
- 최홍윤 시인
12월의 송가
12월에는 서쪽 하늘에
매달려 있는 조바심을 내려서
해 뜨는 아침바다의 고운 색으로
소망의 물을 들여 다시 걸어놓자
가식과 위선의 어색함은
더 굳기 전에 진솔함으로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는
버릇되기 전에 이해함으로
욕심과 이기심은
조금 더 양보와 배려로
소망의 고운 색깔에다 함께 보태자
우리의 살아온 모습이
실망스러워도 포기는 하지 말자
이젠 그리워하는 만큼
솔직하게 더 그리워하고
사랑을 깨달았던 만큼
열심히 더 사랑하고
망설였던 시간만큼용기를 내어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리고 저문 해 바라보며
화해와 용서의 촛불을 밝히고
아직도 남은 미움,
아직도 남은 서러움 모두 태우자
우리에겐 소망이 있는
내일의 새해가 있으니까.
- 오광수 시인
12월의 엽서
또 한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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