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월에
―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헤죽, 헤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돈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10월이 되면 문태준 시인의 이 시가 꼭 첫머리로 떠오른다. 시인은 비어 있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비어 있으면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인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말이 좀 어렵지만 진짜 그렇다. 비어 있음 안에는 비어 있음의 쓸쓸함과 풍경과 느낌들이 들어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런 비어 있음과 채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다. 좋은 만큼 지극히 쓸쓸한 것은 그의 시를 읽을 때 함께 담아야 하는 덤이다.
10월은 텅 비어가는 시절의 첫머리에 해당한다. 우리는 덜어내고, 비워내고, 털어내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본다. 그러기에 풍성함은 더욱 감사하고, 사그라드는 것은 더욱 애잔하다.
그것을 이 시인은 어쩜 이렇게 딱 그려냈을까. 시인은 시든 오이나 꽃빛처럼, 10월의 운명에 처한 상실의 대상들을 잘 포착하고 있다.
뭔가 다 사라지고 있구나, 이런 상실을 너무나 잘 깨닫는 이유는 이미 상실을 너무나 잘 경험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집에 와서 혼자서 찬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고 썼다. 반찬 없는 것도 속상한데 온기도, 식구도, 사랑도 없다.
아무리 ‘혼밥’ ‘혼술’이 대세라지만 시월은 원래가 쓸쓸한 계절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혼자는 더 쓸쓸하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아마도 10월은 역시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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