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레시피/우리고전

<이춘풍전> 줄거리와 전문

by 늘해나 2025. 4. 27.
반응형

 

&lt;이춘풍전&gt; 섬네일 이미지

 

 

고전소설 <이춘풍전> 줄거리와 전문

 

<이춘풍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조선 숙종 시절을 배경으로 이춘풍이 유흥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기생의 집에서 하인 노릇까지 하게 되었으나, 아내의 노력으로 개과천선하여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는 내용의 풍자소설이다.

 

 

<이춘풍전> 줄거리

조선 숙종 때 서울에 사는 이춘풍은 가정은 돌보지 않고 놀러 다니며 집안의 재산을 탕진한다. 나중에는 아내가 품을 팔아 모은 돈까지 다 써서 없애고 빚까지 진다.

 

돈이 떨어진 춘풍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 김씨가 굶주려서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다. 이에 춘풍은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반성하고, 아내에게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까지 한다.

 

이에 김씨는 기뻐하며 열심히 품팔이하여 돈을 모은다. 그러나 춘풍은 다시 교만해진다. 교만해진 춘풍은 호조에서 돈 2,000냥을 빌리고, 호조에서 빌린 돈과 아내가 모은 돈 500냥을 가지고 평양으로 장사하러 간다.

 

춘풍은 평양 명기 추월에게 빠져서 장사는 하지 않고 돈을 탕진하다가, 이윽고 추월에게 박대와 수모를 받으며 추월의 집에서 하인 노릇을 한다.

 

남편의 소식을 들은 아내는 마침 이웃에 사는 참판이 평양감사로 부임하게 되자, 참판에게 청하여 스스로 비장이 된다. 비장이 된 아내는 남자로 변장하고 평양에 간다.

 

그리고 추월의 집을 찾아가 추월의 간교한 행색과 남편의 거지 같은 모습을 확인하고, 추월을 엄히 꾸짖는다.  추월에게 5,000냥을 남편 춘풍에게 주게 하고, 춘풍에게도 태장을 쳐서 죄를 다스린다.

 

춘풍은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왔으나, 아내가 비장의 복장으로 나타나서 춘풍을 꾸짖는다.  춘풍은 비장이 아내인 것을 알고 개과천선하여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데에 힘써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을 이룬다.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lt;이춘풍전&gt; 원본

 

 

<이춘풍전> 전문

 

나라와 백성이 두루 평안하던 숙종대왕 즉위 초에 서울 다락골에 한 사람이 있으되 성은 이(李)요 이름은 춘풍(春風)이라. 집안은 장안의 거부(巨富)이나 혈육이 오직 춘풍뿐이라 부모 매양 사랑하여 교동으로 길러내니 인물이 옥골이오 헌헌장부라. 타인과 달라 못할 것이 전혀 없더라.

그렇듯 지내다가 양친이 일시에 세상을 뜨니 춘풍이 망극하여 삼년상을 마친 후, 경계할 이 없으매, 남북촌 오입장이와 한데 휩쓸려다니며 하는 일마다 방탕하며 주야로 노닐며 누만금을 헛되이 낭비하니 천하 부자 석숭(石崇)인들 그 무엇이 남을손가. 티끌같이 없어지고 진토같이 다 마른다. 전에 놀던 청루미색 나를 보면 헤어진다.

 

춘풍이 하릴없이 제 집에 돌아와 제 처더러 하는 말이,

"가빈(家貧)에 사현처(思賢妻)라 옛글에 일렀건만 애고 애고 이제 어이할꼬.가련하다.“

 

춘풍의 아내 하는 말이,

"여보소 내 말 듣소. 대장부 되어 나서 문무관에 힘을 써서 알성급제하면 부모 전에 영화 뵈고 후세에 이름 내어 장부의 사업을 하면 패가를 할지라도 무엄치나 아니할꼬. 그렇지 못하면 농업에 힘을 써 처자 굶기지 말고 외식 호강으로 지내다가 말련에 자식에게 전장하고 내외가 종신 평생하면 그도 아니 좋을손가. 부귀공명 마다하고 이녁이 어찌 굴어 부모의 세전지물 하루아침에 다 날려버리고 방탕하여 이렇듯 되었으니 어이 사잔 말고. 마오 마오 주색잡기 좋아마오. 모시전골 김부자도 술 잘 먹고 허랑하기 장안에 유명터니 수만금을 다 없애고 기름장사 다니네. 일로 두고 볼지라도 주색잡기 다시 마오."

 

이렇듯 만류하니 춘풍이 대답하는 말이,

"자네 내 말 들어보소. 술 잘 먹는 이태백도 일일 300배에 매일 장취하였대도 한림학사 다 지내고 자골전 일손이는 주색잡기 하였어도 나중에 잘되어 일품벼슬 하였으니 일로 볼지라도 주색잡기 좋아하기 남아의 상사로다. 나도 이리 노닐다가 일품 벼슬하고 이름을 후세에 전하리라."

 

이렁성 하탕하여 조석을 이룰 수 없이 탕진한지라. 그의 처가 작심하기로 수기를 써달라고 하여 차후 처 김씨가 재물을 모으더라도 일푼전 쓰지 않기로 약조하고 수기를 써 증인과 지필한 사람에 이춘풍이라 쓰더라.

 

이후로 춘풍의 처가 재물을 모으기 시작하니 사시장철 주야로 쉴 새 없이 사오년을 모은 돈을 장변 월수 놓아 수천금을 모았고나. 의식이 넉넉하고 가세가 풍족하여 그릴 것이 바이없다.

 

이때에 춘풍이 아내 덕에 의복관망 치레하고 고량진미하여 제집 술로 매일 장취하는구나. 이때에 교만한 마음이 절로 나 호조 돈 2000냥을 대돈으로 얻어내어 온갖 사물에 능통한 자인 것처럼 행세하며 평양으로 장사 떠나려 하니 그의 아내 대경하여 춘풍더러 하는 말이,

 

"여보시오 서방님, 내 말 잠깐 들어보소. 평양물정 내 들었소. 청가일곡 교태하여 돈 많고 허랑한 자는 제 세워두고 벗긴다네. 평양물정 이렇다니 부디 장사 가지 마오."

 

그러나 춘풍이

"나도 또한 사람이지. 20년전 패가하고 원통하기 골수에 박혔으니 낸들 매양 패가할까. 속속히 다녀옴세."

 

그래도 그의 아내 다시 말리는지라 춘풍이 말하기를

"천리 원정 장사길에 요망한 계집년이 잔말을 이리 하니 이런 변 또 있는가."

 

제 아내 윽박지르고 집안 재물 다 떨어서 말에 싣고 떠날 적에 불쌍하다. 춘풍 아내 아무리 한들 말릴 소냐. 무간할러라. 이때 춘풍이 2500냥 삯말 내어 실어놓고 발행할 제, 좋은 말 반부담에 가추 차려 호피 돋움 높이 하고 내려간다.

 

춘풍의 거동 보소. 최성루 돌아들어 좌우 산길 구경하고 또 한편 바라보니 옛 마음이 절로난다. 청루 앞을 썩 지나서 객사 동편 주인하고 열두바리 실어 온 돈 차례로 들여놓고 삼사일 유숙하며 물정을 살피더니, 일일은 난간에 의지하여 한 집을 바라보니 칩 치레도 좋거니와 저 집 주인 거동 보소.

 

평양 일색 추월(秋月)이라. 얼굴도 일색이요, 노래도 명창이요, 연광은 15세라. 성중의 호걸객과 팔도의 소년 한량 한 번 보면 수삼백 쓰기를 물같이 쓰는 구나.

 

이때 서울 부상대고 이춘풍이 수천 냥 싣고 와서 뒷집에 주인했단 말을 듣고 추월이 넌짓 춘풍을 흘리려고 벽게수 청루상에 사창을 반쯤 열고 표연한 교태로 천연히 앉은 모양 춘풍이 얼른 보니 얼굴 태도 청천명월 같고 모란화 아침 이슬에 반쯤 핀 형상이요 달 속에 있는 중전의 항아(姮娥, 달 속에 있다는 선녀)로다.

 

춘풍이 꾀꼬리 양류목을 찾아가듯, 도연명(陶淵明, 중국 심양 출생의 진나라 시인으로 귀거래사를 남겨두고 귀향함)이 심양으로 찾아가듯, 나비가 꽃밭을 찾아가듯, 맹상군(孟嘗君,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왕족)의 갈짓자 걸음으로 중문 안에 들어서니 추월의 거동 보소.

 

춘풍이 오는 양을 얼른 보고, 옥안을 번 듯 들어 계하에 내려서서 춘풍의 나삼을 휘어잡고 난간에 올라서서 좌우를 살펴보니 집치레도 휘황하다.

 

추파를 반만 들어 영접하여 앉은 모양 아리땁고 고운 태도 팔자춘산(八字春山, 여덟 팔 자 모양의 봄 산이라는 뜻으로, 미인의 눈썹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두 눈썹에 반분대 다스리고, 삼단 같은 머리채 휘휘슬슬 흘려 빗겨 금봉채 단장하고, 섬섬옥수로 전라도 진안초(鎭安草)에 평안도 삼등초(三登草)를 설설 펴서 얼른 담아 청동화로 백탄 숯불 불 붙여서 춘풍전에 드릴 적에 향내가 진동하니 춘풍이 받아 물고 하는 말이,

 

"나도 경성에 생장하여 청루미색(기생집의 아름다운 기녀) 결연하다가 여기를 내려와서 객회(객지에서 느끼게 되는 울적하고 쓸쓸한 느낌)가 적막키로 갸야금야숙창가니 동작의 생황진을 네 들을쏘냐." 하니,

 

추월이 잠깐 웃고 여쭈오되,

"원로 경성에 평안히 오시니까. 뒷집에 사처하여 사오일 유숙하되 어이 그리 더디던고."

 

이 말 저 말 다 버리고 추월이 분부하되, 주찬을 차려올 제, 온갖 과일, 산해진미에 국화주 감홍로 계당주, 소주, 향기로운 엽연주며 석달 열흘 백일주를 갖춰놓고 섬섬옥수 졸졸 퐁퐁 가득 부어 춘풍에게 드리거늘,

 

춘풍이 하는 말이,

"평양이 소강남으로 들었으니 권주가나 들어 보세."

 

추월이 단순을 반개하여 청가 일곡으로 권주가를 부를 적에,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오. 이 술은 술이 아니라 한무제의 승로반에 이슬 받은 술이오니 쓰다 다나 잡수시오. 우리 일생 한 번 돌아가면 뉘라 한 번 먹사오리. 살았을제 먹사이다.“

 

춘풍이 받아먹고 흥에 겨워 노는 구나.

“추월 춘풍 연분 맺어 한 가지로 놀아볼까."

 

추월이 대답하되,

“추월이 밝았으니 춘풍이 좋을씨고. 진실로 그럴 양이면 추월 춘풍 놀아볼까."

 

이 날부터 허랑한 이춘풍이 장사에 뜻이 없고 2500냥을 마음대로 쓰는구나.

장취불성 맑은 소리로 일삼으며 주야로 노닐거늘 추월이는 수천 냥을 홀리려고 교태 만발이라.

 

춘풍이 일호나 사양할까. 수천 냥 돈을 비일비재 내어주니 청산유수 아니어든 오랠손가. 철없는 춘풍이 의식을 염려없이 추월에게 붙여두고 배부르게 자빠져서 춘풍의 간교를 추호나 알손가.

 

추월이 거동보소. 춘풍의 재물을 빼앗고 괄세하여 내친다. 슬픈 거동 가련하다.

만나보면, "내 눈에 보기 싫다."

 

생증내어 구박할 제, 단돈 한 닢 내어주며 바삐 나가라 재촉하니 춘풍의 거동 보소.

분한 마음 폭발하여 추월에게 하는 말이,

 

"우리 둘이 갓 만나서 원앙금침 마주 누워 불원상리 굳던 언약 태산같이 언약하여 대동강 물이 마르도록 떠나지 말랬더니 이렇듯 깊은 맹세 농담인가. 이제 이 말이 웬 말인가."

 

추월이 이 말 듣고 변색하여 하는 말이,

"이 사람아, 내 말 들어보소. 청루 물정 몰랐던가. 평양 기생 추월 성식 몰랐던가. 자네가 가져온 도냥 혼자 먹던가."

 

이같이 구박하여 등 밀치며 어서 바삐 가라하니, 춘풍이 분한 김에 탄식하며 기둥 비켜서서 이러저리 생각하니 한심하고 가련하다.

 

집으로 가자하니 무면도강동(無面渡江東, 일이 실패하여 고향에 돌아갈 형편이나 면목이 없음)이요, 처자 부끄럽고 막중 호조돈 2000냥을 내어다가 한 푼 없이 돌아가면 의금부 옥에 가두고 주장대로 지르면 속절없이 죽겠으니 서울로도 못 가겠고, 구걸도 못하겠고, 불원천리 가자니 노잣돈도 없으니 이를 알차 어찌하나.

 

이러저리 생각하다 추월 앞에 나가 앉아 간절히 비는 말이,

"추월아 추월아. 내말 잠깐 들어봐라. 우리 조선이 인정지국이거늘 어찌 그리 박절한가. 날 살리게. 자네 집에 돌오 있어 물이나 긷고 불이나 지피는 심부름꾼이나 하면 어떠할꼬."

 

추월이 눈을 흘겨보면서,

"여보 이 사람아, 자네가 전 행실을 못 고치고 '하네'소리 하려면 내 집 다시 있지 마소."

 

이렇듯 구박하니 춘풍이 하릴없어 '아가씨' 말이 절로 나고 존대가 절로 난다. 춘풍이 이 날부터 추월이 집 사환하는 일 생불여사(生不如死, 살아 있음이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몹시 어려운 형편에 있음을 이르는 말)라 가련하다.

 

각설, 이때 춘풍의 처 가장을 이별하고 100가지로 생각하며 주야로 탄식하고 있을 적에 춘풍은 아니오고 풍편에 오는 말이 서울 사는 이춘풍이 평양 장사 내려가서 추월을 작첩하여 호강으로 노닐다가 수천금 재물을 다 없애고 추월에게 구박맞아 사환한단 말을 듣고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는 말이,

 

"애고애고 이 말 웬 말인고. 어이 그리 허랑한고. 청루미색에 한 번 치패도 어렵거든, 천리타향에 막중국전(莫重國錢)을 대돈변으로 내어가지고 또 낭패하단 말인가. 에고 답답스런지고. 내 뉘를 바라고 살잔 말인가.“

 

이를 갈며 하는 말이,

"평양을 찾아가서 추월의 집 찾아내어 추월의 머리채를 감아쥐고 춘풍에게 달려들어 허리띠에 목을 매어 죽으리라."

 

악을 내어 울다가 도로 풀쳐 생각하되,

" 이리도 못하리라. 내 가장을 데려다가 살릴지라도 어찌하리오. 원수로다 원수로다. 평양 장사 원수로다."

 

이렇듯이 지내더니, 뒷집의 참판댁이 있으되 노대감은 돌아가고 맏자제 문장으로 소년 급제하여 갖은 벼슬 다 지내고 근년에 평양 감사 한단 말을 듣고 춘풍의 처 계교를 생각더니, 그 댁이 빈한하여 국록을 타서 수다 식구 사는 중에 그 대부인 있단 말을 듣고 침재품을 얻으려고 그 댁에 들어가니 참판의 대부인 평상에 누워 형세 가난키로 식사도 부실하고 초췌하다.

 

춘풍 아내 생각하되,

'이 댁에 붙이어서 가장을 살려내고 추월을 설치하여 보리라.' 

 

마음 단단히 먹고 침재품을 팔아 얻은 돈냥 다 들여서 참판댁 대부인 조석 진지 차려가니 부인이 감지덕지 생각하여 '이 은혜 어찌 갚을꼬.' 주야로 근심하고 참판 또한 이 말 듣고 치사하니 더욱 기특히 보고 매일 사랑하더라.

 

천만 이외에 참판 영감이 평양 감사를 하였구나. 이때 춘풍의 처 대부인께 은공히 여쭈오되,

"이번에 천은으로 평양감사 하였으니 이런 경사 없사이다."

 

대부인 말씀하되,

"나 평양 가려하니 너도 함께 내려가서 춘풍이도 찾아보고 구경이나 하는 것이 어떠하뇨."

 

춘풍의 처 여쭈오되,

"소녀는 고사하고 오래비 있사오니 비장(裨將) 한몫 주시기 바라나이다."

 

대부인 이 말 듣고

"네 청이야 아니 들을쏘냐." 하고 감사께 통기하니,

 

감사 허락하고

"제가 비장할 양이면 바삐 거행하라." 하니,

 

춘풍의 처 없는 오래비 있다 하고 제가 손수 가려고 여자 의상 벗어놓고 남자의복 치장한 연후에,

감사댁 대부인전에 가 "춘풍의 처 문안드리나이다." 여쭈오니 대부인이 영아하여 왈,

 

"춘풍의 처면 남복은 무슨 일인고." 하니 춘풍의 처 아뢰되 스스로 비장이 되어 감사 모시고 평양 가서 추월을 설치하여 호조돈 수쇄하고 지아비 데려다 백년동락하려 한단 말을 듣고 대부인이 대소왈,

 

"네 말이 그러하니 불쌍하고 가련하다. 소원대로 하여주마."

 

이리하여 춘풍의 처 남장하고 신임 감사의 회계비장으로 수행하니 여러 비장들이 수근대며 하는 말이

"회계 비장 잘도 낫다마는 수염이 없으니 그것이 험이로다."

 

춘풍의 처 회계비장으로 백사 더욱 진실하고 사또 날로 사랑하여 일마다 미루어 맡기어 수삼삭에 수만 냥을 상급하니 뉘 아니 칭찬하리.


이때 회계비장 춘풍 추월의 일을 염탐하여 자세히 듣고 하루는 비장이 추월의 집 찾아갈 제, 그년의 집 중문에 들어서니, 물통 지는 저놈 형용도 참혹하고 모양도 가련하다. 3년이나 아니 빤 주루룩이 누덕이 옷을 입고 낯조차 못 씻었던가. 추잡하기 그지없다.

 

춘풍이야 제 아내인 줄 어찌 알랴. 비장이 슬프고 분한 마음 서려 담고 추월의 방에 들어가니, 간사한 추월이 회게비장 또 홀리려고 교태하여 각별히 다담상을 만반 진수로 차려드리거늘, 비장이 약간 먹는체 하고 사환하는 걸인을 내어주며,

 

"불쌍하다. 네가 본대 걸인이냐 네 어찌 저 지경이 더되었느냐."

 

춘풍이 복지 대왈,

“소인도 경성 사람으로 이리 온 사정이야 어찌 다 여주오리까. 나으리 잡스시던 다담상을 소인 같은 천한 몸에게 주시니 은예 감사무지하여이다.”

 

비장이 미소하고 처소에 돌아와서 수일 후에 사령 불러 분부하되, 춘풍을 잡아들여 형틀에 올려매고 막중 호조 돈 수천 냥 내어가지고 사오년이 되도록 일푼 상납 아니함을 호되게 문초하여 바른대로 아뢰라 한다,

 

이에 춘풍이 이실직고하여 아뢰기를 추월과 놀다보니 일푼 남김없이 썼다 하니, 추월을 바삐 잡아들여 형틀에 올려놓고 태장 십여 장을 중치하며 죄를 실토하라 하니 추월이 춘풍의 돈은 소녀에게 모르는 일이라 하니 비장이 노하며,

 

"네 어찌 모르리오. 막중 호조 돈을 영문에서 물어주랴. 본부에서 물어주랴. 네가 먹었거든 무슨 잔말 아뢰느냐. 너를 쳐서 죽이리라."

 

50도를 중히 치며 서리 같이 호령하니, 추월이 기가 막혀 혼이 질겁을 내어 죽기를 면하려고 3일 말미만 주시오면 이잣돈까지 합쳐 5000냥을 바치겠노라 다짐 써 올리니 추월을 형틀에서 내려놓고 춘풍더러 이르되,

 

"10일 이내에 5000냥을 받아가지고 서울로 올라오라. 내가 유고하여 먼저 올라가니 뒤를 미쳐 올라와 댁을 찾아오라."하고 감사전에 여쭈오되,

 

"추월 설치하고 춘풍도 찾삽고 호조 돈도 수쇄하오니 은혜 감축 무지하온 중 소인 몸이 외람히 존중한 처소에 오래 있삽기 죄만하와 떠날 줄로 아뢰나이다."

 

감사 그러히 여겨 허락하니, 이튿날 감사께 하직하고 상급한 돈 5만 냥을 환전 부쳐놓고 또 떠나서 여러 날만에 집에 와 돈하고 환전도 찾은 후 남복도 벗어놓고 춘풍 오기 기다리더라.

 

이때 춘풍이 5000냥 받아 실어놓고 갓 망건 의복치레하여 경성을 올라와 제 집을 찾아가니 춘풍의 처 문밖에 썩 나서서 춘풍의 소매 잡고 깜짝 놀라며 하는 말이

 

"어이 그리 더디던고. 장사에 소망 얻어 평안히 오시니까."

 

춘풍이 반기면서

"그새 잘 있었는가."

 

춘풍이 이십아리 돈을 여기저기 벌여놓고 장사에 남긴 듯이 의기양양하니 춘풍의 아내 거동보소. 주찬을 소담히 차려놓고

"자시오." 하니 저놈 거동 보소. 젓가락도 그릇바고 고기도 씹어버리며 하는 말이,

 

"평양 일색 추월이와 좋은 안주 호강으로 지내더니 집에 오니 온갖 것 다 어설프다. 안주도 좋지 않고 술맛도 무미하다. 호조돈이나 다 셈하고 평양으로 내려가서 작은 집과 한 가지로 음식을 먹으리라."

 

이때 춘풍의 처 상을 물려 놓고 황혼시에 밖에 나가 비장 복색 다시하고 대문 안에 들어서 기침하고 "춘풍 왔느냐" 하니 춘풍이 자세히 보니 평양서 돈 받아주던 회계비장이라. 춘풍이 황겁하여 버선발로 뛰어 내달아 복지하여 여쭈오되,

 

"소인이 오늘 와서 날이 저물어 명일에 댁 문하에 문안코자 하옵더니 나으리 먼저 행차하옵시니 황공만만 하여이다."

 

비장이 왈, "네 마침 지나다가 네 왔단 말 듣고 들렸느니라." 하고는 자초지종을 물어본 뒤에 술을 내오라하여 마시고는 평양 기생 추월의 집에서 사환하던 것을 말하니 춘풍이 제 아내 들을까 전전긍긍하더라.

 

비장이 밤이 깊어 "네 집에서 자고 가리라." 하고 의복과 갓 망건을 벗으니 춘풍이 감히 가란 말은 못하고 속마음으로 해포만에 그리던 아내 만나 잘 살까 하였더니 비장이 잔다 하니 속으로 민망히 여기더라.

 

관망 탕건 벗어 웃옷을 훨훨 벗은 후 일어서니 완연한 제 계집이라. 춘풍이 깜짝 놀라 어이없어 묵묵무언 앉았으니 춘풍의 처 달려들어

"이 사람, 인제도 나를 모르시오."

 

춘풍이 그제야 아주 깨닫고 깜짝 놀라며 두 손을 마주 잡고

"이것이 웬 일인가. 평양 회계비장으로서 지금 내 아내 될 줄 어이 알리. 이엇이 생시인가 꿈인가 태중인가. 귀신이 내 눈을 어리어 이러한가."

하며 원앙금침에 구정을 다시 이뤄 은근한 정이 비할 데 없더라.

 

춘풍 하는 말이,

"어찌하여 평양 비장으로 내려오며, 또 내가 아무리 잘못하였기로 가장을 형틀에 올려 매고 볼기를 친들 그다지 몹시 치니, 그 때 자네 마음이 상쾌하던가."

 

춘풍 처 답왈,

"그 때 자청하여 일푼전 일두속을 불부 착수할 뜻으로 맹세하고 수기 써서 내 함롱에 넣어놓고 무슨 미친 마음으로 호조 돈 수천 냥을 내어가지고 가서 다 날리었소. 비장으로 내려갈 제는 임자를 보게 되면 반만 죽이려 하였더니 만나보니 차마 불쌍하여 더 치지 못하고 용서하였거든, 사오년 내 고생하던 생각하면 당신 맞던 매가 깨소금이오."

 

하면서 내외가 서로 웃고 전후사를 다 이르며 인하여 호조 돈을 다 수보하고, 춘풍이 개과하여 주색잡기 전폐하고 치가를 일삼아 형세도 요부하고 유자 생녀하고 감사가 과만하여 올라온 후, 안팎 없이 다니며 평생 신을 끊지 않고 대대손손이 섬기더라.

 

 

 

<두껍전> 줄거리와 해설

줄거리와 해설 ❑  등장인물 • 노루 선생회갑를 맞은 오룡산의 어르신. 회갑잔치에 포악하기로 유명한 호랑이 대왕을 초대하지 않은 대범함을 보인다.  • 토끼오룡산의 꾀돌이. 호랑이 없

bookhappy.tistory.com

 

 

<박지원의 한문소설> 양반전, 허생전, 호질 등 작품해설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소설가, 연암 박지원이 당시 양반사회의 허위와 위선을 풍자하고 비판한 8편의 이야기 작품해설 한 푼도 못 되는 그놈의 양반 [ 목차 ] 1. 광문자전 _ 저 시커먼 것이 무엇이

bookhappy.tistory.com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