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위로의 시편지 <꽃잎 한 장처럼>
이해인 수녀님의 새로운 책 <꽃잎 한 장처럼>에 실린 30여 편의 시와 글들은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해인글방 안에 머물며 쓴 것이다. 급변한 우리 삶의 모습들. 그 속에서도 교훈을 얻고 희망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부는 이해인 수녀님이 쓰신 최근 시들. 2부는 일간지에 연재됐던 시 편지들, 3부는 여러 기념 시와 글들을 담았다. 그리고 4부는 지난 1년간 일상생활을 메모해 둔 일기 노트의 일부를 실었다.
꽃잎 한 장처럼
살아갈수록 나에겐 사람들이
어여쁘게 사랑으로 걸어오네
아픈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걸어오는
그들의 얼굴을 때로는
선뜻 마주할 수 없어
모르는 체 숨고 싶은 순간들이 있네
늦은 봄날 무심히 지는
꽃잎 한 장의 무게로
꽃잎 한 장의 기도로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오랫동안 알고 지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그들의 이름을 꽃잎으로 포개어
나는 들고 가리라 천국에까지
- <꽃잎 한 장처럼> p.44-45
한 편의 시처럼
오래오래 생각해서
짧게 쓰는 시
길게 늘렸다가
짧게 압축하는 시
짧을수록 오래 읽은
시가 좋았다
시처럼 살고 싶었다.
- <꽃잎 한 장처럼> p.47
어떤 일기
어떤 일로
마음속에
화가 머물러
살짝 균형이
깨졌을 때도
온몸이
몹시
가렵거나
쓰라린 통증으로
집중이 안 될 때도
무어라고 중얼중얼
푸념하기보단
나는 그냥
웃어보기로 한다
살아 있기에
아프기도 한 거야
다 지나갈 거니
조금만 더 참아보자
스스로를
가만히 다독이면서
평화를 부르니
아파도 슬퍼도
어느새 살며시
반가운 얼굴로
평화가 온다.
- <꽃잎 한 장처럼> p.74-75
거울 앞에서
아주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니
마음은 아직
열일곱 살인데
얼굴엔 주름 가득한
70대의 한 수녀가 서 있네
머리를 빗질하다 보니
평생 무거운 수건 속에
감추어져 살아온
검은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해서
떨어지며 하는 말
이젠 정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아요
기도할 시간이
길지 않아요
나도 이미
알고 있다고
깨우쳐주어 고맙다고
웃으며 대답한다
오늘도 이렇게
기쁘게 살아 있다고
창밖에는 새들이
명랑하게
노래를 하고!
나를 부르고!
- <꽃잎 한 장처럼> p.23-25
비 오는 날의 연가
스무 살에 수녀원에 와서
제일 먼저
비에 대한 시를 썼다
풀잎 끝에 달린
빗방울이 눈부셨다
비를 맞으며
많이 웃었다
일흔 살이 넘은 지금
비가 오면
몸이 많이 아파서
마음 놓고 웃을 수는 없지만
떨어지는 빗줄기
기도로 스며들고
빗방울은 통통 튀는
노래로 살아오니
힘든 사람부터
사랑해야겠다
우는 사람부터
달래야겠다
살아 있는 동안은
언제 어디서나
메마름을 적시는
비가 되어야겠다
아니 죽어서도
한줄기 비가 되어야겠다
- <꽃잎 한 장처럼> p.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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