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생애와 인생 명언들
❐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의 생애
‘밀림의 성자’로 불리는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의사이기 전에 뛰어난 신학자이면서 오르간 연주가, 음악 평론가였습니다.
그는 20대에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라는 저서로 유럽 전역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신학자였으며, 바흐 해석에 탁월한 오르간 주자이자 음악이론가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슈바이처는 30세 때 아프리카 원주민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잘 나가던 교수가 미지의 영역에 학생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는 8년 뒤 지금의 가봉공화국이 있는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로 향합니다.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는 남편을 돕기 위해 간호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슈바이처는 닭장에서 온 군데에서 밀려오는 환자를 즐겁게 치료했습니다. 1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많은 평화주의자들이 유럽으로 돌아와 반전운동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반전시위보다 값진 것”이라며 묵묵히 의술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구금되기도 했고, 전쟁 뒤에는 ‘포로 아닌 포로’로 프랑스에 잡혀 가기도 합니다.
슈바이처는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가 병원을 짓고 한센병 환자 거주지도 마련합니다. 그러면서도 신학과 음악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아 《사도 바울의 신비》(1930)를 출판했으며, 아내와 함께 바흐의 작품에 대한 평론도 계속 내놓았다고 합니다.
슈바이처는 1954년 노벨상을 받았지만, 노벨상이 없어도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는 늘 신음하는 환자와 함께 하면서 이런 통찰을 얻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다. 그럴 때에는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이 덜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라.”
1965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슈바이처에 대해서 ‘원주민을 함부로 대했다,’ ‘의사로서의 실력이 수준 이하였다’ 등 수많은 비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방관자의 시각으로 비판하기는 쉬워도, 현실에서 이상을 실천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지요.
- 코메디닷컴 <이성주의 건강편지>에서
❐ 슈바이처 박사와 노벨상
슈바이처는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합니다,
슈바이처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를 떠나 파리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덴마크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신문기자들이 취재를 하려고 그가 탄 기차로 몰려들었습니다.
당시에 슈바이처는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 칭호를 받은 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취재 경쟁에 열중한 기자들이 한꺼번에 특등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 슈바이처를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지요.
기자들은 다시 일등칸으로 몰려가서 찾아보았으나, 거기에도 그는 없었습니다. 또 다시 이등칸으로 가 봤으나, 거기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기자들은 허탈해하며 그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영국 기자 한 사람만이 '혹시나' 하고 3등칸을 기웃거리다가 뜻밖에 거기서 슈바이처를 찾아냈습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딱딱한 나무 의자에 꽉 끼어 앉아 있는 퀴퀴한 악취로 가득한 3등칸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슈바이처는 그들을 진찰하고 있었습니다. 놀란 기자가 그에게 특등실로 자리를 옮기기를 권했으나, 슈바이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3등칸에 타셨습니까?"
"예, 이 기차는 4등칸이 없어서요."
"아니 그게 아니고 선생님께서 어쩌자고 불편한 곳에서 고생하며 가십니까?"
슈바이처는 잠시 후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편안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 슈바이처 박사가 남긴 인생 명언
[1]
비관론자는 빨간 신호등만 보고
낙관론자는 녹색신호등만 본다.
그러나 정말 현명한 사람은 색맹이다.
[2]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사색을 포기하는 것은
정신적 파산 선고와 같은 것이다.
[3]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 자신 속에 빛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면 스스로 밖이 빛나는 법이다.
[4]
내가 아는 단 한 가지 사실은
그대들 중 참으로 행복해지려는 사람들은
남을 위해 섬기는 길을 찾아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5]
모든 환자는 가슴 속에
자신만의 의사가 있다.
[6]
우리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가르쳐야 할 처세술은
이상에 따라 현실을 살아야 하며
이상을 생활에 뺏기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7]
나무에는 해마다 같은 열매가 달리지만
실제론 매번 새로운 열매다.
마찬가지로 사유에 있어서도
보편적으로 가치 있는 사상이
늘 새롭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8]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라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
만약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성공한 것이다.
[9]
끊임없는 친절은 많은 것을 성취한다.
태양이 얼음을 녹이듯
친절은 오해, 불신, 적의가
증발하게 만든다.
[10]
모범이 곧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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