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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더 꽃이다
- 유안진
어린 매화나무는 꽃 피느라 한창이고
사백 년 고목은 꽃 지느라 한창인데
구경꾼들 고목에 더 몰려섰다.
둥치도 가지도
꺾이고 구부러지고 휘어졌다.
갈라지고 뒤틀리고 터지고 또 튀어나왔다.
진물은 얼마나 오래 고여
흐르다가 말라붙었는지
주먹만큼 굵다란 혹이며 패인
구멍들이 험상궂다.
거무죽죽한 혹도 구멍도
모양 굵기 깊이 빛깔이 다 다르다.
새 진물이 번지는가
개미들 바삐 오르내려도
의연하고 의젓하다.
사군자 중 으뜸답다
꽃구경이 아니라 상처 구경이다.
상처 깊은 이들에게는
훈장으로 보이는가
상처 도지는 이들에게는
부적으로 보이는가
백 년 못 된 사람이
매화 사백 년의 상처를 헤아리랴마는
감탄하고 쓸어 보고 어루만지기도 한다.
만졌던 손에서 향기까지 맡아 본다
진동하겠지 상처의 향기
상처야말로 더 꽃인 것을.
올해로 등단한 지 56년, 시집 18권을 낸
유안진 시인은 400년 된 매화나무에
꽃이 핀 것을 예찬하며
"인생은 고통없이 숭고해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힘든 상황이든 잘 이겨내라는
응원의 의미로
이 시를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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