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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배움의 글/단편소설 읽기

이범선 <고장난 문> 전문

by 늘해나 2024.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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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네일 이미지

 

 

고장난 문

 

- 이범선

 

 

“자, 그럼 처음부터 찬찬히 이야기해 봐. 거짓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우린 벌써 다 알고 있으니까.”

열여덟 살 만덕이에게는 아버지뻘이나 되어 보이는 중년 수사관이 볼펜을 거기 조서 위에 굴려 놓고 걸상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이미 조서는 꾸며졌으니 들으나마나 한 이야기지만 하도 애원을 하니까 한 번 더 들어 봐 준다는 그런 대도였다.

“형사님, 제가 왜 무엇 때문에 거짓뿌렁을 합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한 말은 다 사실입니다. 요만큼도 거짓뿌렁 없습니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나무 걸상에 두 무릎을 모으고 단정하게 앉은 만덕은 새끼손가락을 하나 세우고 그 새까만 손톱을 가리켜 보이며 울상을 지었다.

“글세, 그러니까 한 번 더 얘기해 보라는 거 아냐!”

수사관은 담배를 붙여 물며 맞은편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뻔한 사건을 빨리 끝내 버리고 싶은 그런 눈치였다.

“나 정말 미치겠네요! 억울합니다, 정말!”

만덕이란 그 눈이 커다란 소년은 벌써 얼마든지 울었던 모양으로 형편없이 얼룩이 진 얼굴을 또 한 번 시꺼먼 작업복 소매로 문질렀다.

“이 녀석아, 그러니까 다시 얘기해 보라는 거 아냐!”

수사관은 꽤 고함을 질렀다. 만덕은 손을 무릎 위에 공손히 내려놓으며 한 번 수사관을 쳐다보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법 맑은 음성에 시고 무식한 소년치고는 이야기가 또박또박 조리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아침이죠. 그게 아마 10시쯤이었을 겁니다. 읍내의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한 통 배달해 주고 갔어요.

 

“그때 너는 펌프에서 밥그릇을 씻고 있었고.”

수사관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예, 다 알고 있구먼요.”

“이 녀석아, 그걸 모르면 어떡해! 그러니까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어. 다 조사했으니까.”

“아 그럼요.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뿌렁을 합니까. 좋아요, 형사 아저씨가 그렇게 다 알고 있으니까 정말 마음이 턱 놓이누만요.”

이번에는 만덕이 그 얼룩진 얼굴에 히죽이 웃음을 담아 보였다. 수사관이 귀신처럼 죄다 알고 있으니 자기의 죄 없음도 알 것이고 진범도 쉬 붙들릴 테니까.

 

그래 난 그 편지를 들고 선생님 화실로 갔죠. 화실은 내가 있는 별채와 따로 떨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문이 잠겨 있더군요.

 

"선생님, 편지 왔습니다."

나는 문을 두어 번 두들겼습니다. 그랬더니 안에서 기척이 들리며 문손잡이를 덜컥거리더군요.

"문이 잠겼구먼."

안에서 선생님이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밖에서 한 번 더 동고란 손잡이를 쥐고 돌려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공연한 짓이죠. 그 출입문은 안에서 잠그게 되어 있거든요. 또 한 번 손잡이가 안에서 덜컥거렸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문이 열리지 않아."

선생님의 음성이 새어 나왔어요. 그러나 밖에 서 있는 나로선 그저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죠.

"밖에가 뭐 잘못된 거 아니냐?"

"아닙니다, 밖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그럼 어떻게 된 거야."

"글쎄요."

"이상하군."

사실 그렀습니다. 그 선생님 화실 문이란 동고란 손잡이가 달려 있었는데 안에서 그 손잡이 한가운데 툭 튀어나온 배꼽 같은 단추를 꼭 눌러서 잠그게 되어 있었거든요. 그리구 안에서 열 때는 그저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되고, 밖에서 열 때는 열쇠를 넣고 돌려야 열리게 되어 있죠. 참 신통한 손잡이예요. 그런데 그게 선생님이 안에서 손잡이를 돌렸는데도 열리지 않거든요.

"이상한데…… 이봐, 만덕이."

"예."

"밖에서 열쇠로 한 번 열어 봐."

"열쇠가 제겐 없는데요."

"저리 앞 창문으로 돌아와. 열쇠를 내보내 줄 테니까."

나는 곧 화실 모서리를 돌아 나갔죠. 포도송이 같은 꽃이 주렁주렁 달려 잇는 등나무 시렁 밑으로 해서 창문 앞으로 갔어요. 선생님이 창문 쇠창살 사이로 열쇠를 내밀어 주시더군요. 나도 역시 쇠창살 사이로 편지를 선생님께 건네고 열쇠를 받았죠. 조그마한 방울이 하나 끈에 달린 하얀 열쇠였어요……. 예, 바로 형사 아저씨 앞에 있는 그 열쇱니다. 방울이 달렸지 않아요.

 

"응, 은방울인데."

수사관이 책상 모서리에서 열쇠를 집어 들어 끈에 달린 방울을 흔들어 보았다. 딸랑딸랑 아주 맑은 소리가 울려 나왔다.

“선생님은 화실에 들어가실 때면 저만치 사립문에서부터 열쇠를 꺼내어 딸랑딸랑 흔들며 들어오시곤 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별채 방안이나 뒤뜰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앞에서 인기척이 나도 그 방 울 소리만 나면 나가 볼 필요가 없었죠. 그건 선생님이 화실로 들어가시는 거니까요. 선생님은 그렇게 인정 있는 좋은 분이었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하다가 공연히 나올까 봐서 일부러 그렇게 방울을 흔드시는 거였죠.”

 

나는 그 열쇠를 들고 문으로 갔어요. 열쇠를 넣고 비틀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은 안 열렸어요.

"선생님, 안 되는데요."

"그래……, 하기야 안에서 비틀어서 안 열리니까."

선생님은 심상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잠잠했습니다. 아마 방금 전해 드린 편지라도 읽고 있나 보다 하고 나는 그냥 앞뜰로 돌아 나오고 말았죠. 열쇠는 그냥 내 호주머니에 넣은 채로 말입니다. 그런데 한 시간쯤 되었을까요. 앞뜰에서 장미나무에 거름을 주고 있노라니까,

"만덕아!"

하고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네."

나는 삽을 던져두고 화실 앞으로 달려갔죠.

"이 녀석아, 문을 열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거야!"

선생님이 창문 안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열쇠로도 안 열리는걸요."

"인마, 그럼 날 이렇게 창살 안에 가둬 둘 작정이냐?"

언제나 그림 그릴 때 입고 있는 그 누렁 샤쓰를 헐렁하니 걸친 선생님은 쇠창살을 친 창문 안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이…… 선생님, 지금 밖으로 나오실려구요?"

"나갈 일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이 녀석아……."

"아무래도 문이 고장이 난 모양인데요."

"어떻게 해 봐!"

나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들고 딸랑딸랑 출입문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손잡이 열쇠 구멍에 쇠를 넣고 또 돌려 보았죠.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선생님은 아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듯 화실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 번 더 손잡이를 비틀어 보곤 그대로 열쇠를 거기 꽂아둔 채 다시 앞뜰로 나와 버렸죠.

사실 선생님 화실 안에는 모든 시설 ― 수도, 가스, 냉장고, 그 속에 빵, 우유, 과일, 그리고 화장실, 욕실까지 다 있거든요. 전혀 아무 불편도 없죠. 그러니까 뭐 문이 당장 안 열린대도 별 볼일 없으리라고 생각했었죠. 사실 선생님은 그전에도 며칠씩 꼼짝 않고 화실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 적이 흔히 있었거든요. 그런 때면 난 될 수 있는 대로 화실 가까이는 가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딴 사람이 화실 안에 들어가는 걸 아주 싫어했거든요.

 

우리 선생님은 좀 이상한 분이었어요. 댁은 서울인데 선생님 혼자서만 서울서 20리나 떨어진 그 강가 언덕 위 별장 화실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형사 아저씨도 보셨죠. 그 언덕 위 밤나무 숲 사이의 화실. 밖에서 보기에는 별거 아닌 보통 기와집이지만, 안은 참 멋집니다. 나는 그 화실 옆에 따로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별채에 살고 있으면서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또 선생님이 서울 올라가시면 집을 지키고 그랬죠.

선생님은 한 달에 한 열흘쯤만 서울에 가 계셨고 20일쯤은 여기 화실에서 혼자 지냈어요. 그렇다고 뭐 사모님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에요. 아니죠, 두 분은 아주 사이가 좋았어요. 예쁜 사모님은 대학에 다니는 역시 예쁜 따님과 같이 때때로 화실에 내려오곤 했어요. 선생님의 양식거리를 잔뜩 꾸려 들고 말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화실 안에서 혼자 손으로 끓여 잡숫곤 했어요.

그러니까 뭐 꼬박꼬박 시간을 정해 놓고 하루에 세 때를 먹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생각나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안 먹고 그래요. 선생님은 그저 그림밖에 몰랐어요. 그림에 미친 분이에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만 사시더군요. 그래서 아마 선생님은 그렇게 유명한 화가인가 봐요.

어찌 보면 꼭 어린애 같아요. 그야말로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사시는 분이었어요. 어떤 날은 한낮에 종일 주무시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밤을 꼬박 새워 가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또 비가 억수로 내리는 속을 우산도 안 쓰고 산보를 하는가 하면 이틀 사흘 기척도 없이 화실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도 하고요.

그런 땐 은근히 걱정이 되어서 화실 창문으로 기웃거릴라치면 선생님은 막 야단을 치곤 했어요. 그래 그 후로는 아무리 며칠씩 선생님이 안 보여도 그저 난 내 방에서 모른 체했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멋대로 지내면서 남이 간섭하는 걸 아주 싫어했거든요. 정말 묘한 선생님이었어요.

난 그런 선생님을 알아차리기까지 꽤 오래 걸렸죠. 그러니까 선생님과 나는 화실과 별채에 따로따로 지내고 있는 거처럼, 한 집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실 따로따로였어요. 어쩌다 편지나 오면 그걸 전하러 화실엘 가는 정도였죠. 그 밖엔 내가 갈 필요도 없었고 또 별로 부르는 일도 없었어요.

선생님과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서로 간섭을 안 하고 사니까 세상 편하고 좋던데요. 선생님도 언젠가 그러더군요. 그게 제일 잘 사는 거라고요.

 

"이 녀석아, 무슨 쓸데없는 군말이 그렇게 많아."

수사관은 담뱃재를 떨며 지루한 듯 말했다.

"아 그렇군요. 선생님 이야길 하다 보니까 그만, 헤헤헤. 어디까지 말씀드렸더라……."

"그래, 다시 앞뜰로 나가서 그 다음은 어떻게 했어?"

 

예, 그랬죠. 앞뜰로 나가서 다시 장미나무에 거름 주기를 계속했죠 뭐. 열쇠로도 문이 안 열리는 걸 어떡헐 도리 있나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 또 선생님이 부르잖아요. 이번엔 아까보다 크고 좀 화가 난 목소리였어요.

"야! 만덕아, 이리 와!"

"예!"

나는 또 화실로 달려갔습니다. 선생님은 창문의 쇠창살을 두 손으로 쥐고 서 있더군요. 나는 창문 밑으로 다가갔습니다.

"야, 이 자식아!"

"……?"

나는 멈칫 섰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얼굴을 살폈죠. 커다란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는 선생님은 화가 몹시 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사실이지 나는 그때까지 선생님의 입에서 이 자식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부르셨어요?"

하고, 나는 겁에 질려서 나직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선생님은,

"인아, 내가 뭐랬지?"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얼이 빠져서 그저 멍멍히 서 있었죠.

"문을 열라고 하잖았어?"

"예…… 그런데 그 문이 열리질 않는걸요."

"그렇다고 그냥 가만두면 열리니?"

"……?"

"가만둬도 문이 생각해 가며 혼자 열리냐 말이다! 문이 살았니?"

딴은 그럴 리는 없죠. 문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얼마큼 골리다가 적당히 열려 줄 턱은 없죠.

"어떻게 열어 봐얄 게 아냐."

"……."

"네 힘으로 안 되면 읍내 목수한테라도 가서 열어 달래야잖아."

"예, 그럼 곧……."

"바보 같은 녀석, 사람을 죄수처럼 철창 안에 가두어 놓고 태평으로 딴짓만 하고 있어!"

나는 돌아서 나오며 등 뒤에 선생님의 역정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기야 갇혔다면 분명히 갇혔지만, 그렇다고 여느 때는 곧잘 며칠씩 꼼짝도 않고 화실 안에서 잘도 지내면서 막상 문이 고장이 나 안 열리니까 그날따라 그렇게 화를 내는 선생님이 좀 이상도 하고 고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진작 읍내 목수한테 나가서 부탁할 생각을 못했던가 하고 정말 멍청이인 나를 탓하면서 그 달음으로 곧 10리쯤 되는 읍내로 들어왔죠. 그런데 목수 아저씨가 집에 없지 뭐예요. 어디 일 갔는데 저녁때에나 돌아올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 미안하지만 저녁 늦게라도 나와서 문을 좀 손 봐 달라고 부인한테 부탁을 하고 돌아왔죠. 바로 그 문을 단 목수 아저씨였거든요.

사실 문제는 그때 목수 아저씨가 집에 없었던 데 있다구요. 목수 아저씨가 있기만 했더라면 같이 나가서 쉽게 문을 고칠 수 있었던 걸, 그날 저녁 늦게까지 기다려도 목수 아저씨가 들어오질 않았지 뭡니까.

"야 인마, 너 정말 목수한테 가긴 갔었어?"

선생님은 저녁 해가 떨어지자 역정을 내시더군요.

"아 그럼요. 제가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럼 왜 아직 안 와!"

"글쎄 꼭 오라고 부탁을 했다니까요."

"그런데 아직 안 오지 않아."

"헤 참, 선생님도 급하시긴. 전에는 며칠씩도 문 밖에 안 나오시곤 했으면서 뭘 그러셔요."

나는 화실 창문 밖 등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쇠창살 안의 선생님 말동무를 해 주며 그렇게 웃었죠. 그랬더니 창턱에 걸터앉은 선생님은 곰방대를 뻐끔뻐끔 빨면서,

"이 녀석 봐라! 그거야 내가 나가고 싶지 않아서 안 나간 거구, 지금은 내가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거 아냐."

하며 웃더군요.

"마찬가지죠 뭘. 안 나가나 못 나가나 화실 안에 있는 건 같지 않아요. 뭘 심부름시킬 일 있으면 시키셔요. 제가 다 해드릴게요."

"일은 무슨 일이 있어, 이 녀석아."

"그럼 됐죠, 뭐."

"허, 녀석. 정말 바보 같은 녀석이구나, 넌."

"어디 제 말이 틀렸어요. 뭐 불편하신 게 있어요, 서울 가실 일이라도 있다면 모르지만."

"듣기 싫다, 이 녀석아. 너하고 이야길 하느니 차라리 우리 안의 돼지하고 하겠다."

"헤 참, 선생님도. 이제 목수 아저씨가 올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그동안 선생님 저녁이나 드셔요. 전 식은 밥이라도 한술 먹어야겠어요."

난 일어나 별채로 나왔어요. 선생님은 화실에 전등을 켤 생각도 않고 그대로 창턱에 걸터앉아 있더군요. 그런데 기다려도 목수 아저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야, 만덕아! 목수 정말 어찌 된 거냐!"

선생님은 내가 채 저녁밥을 다 먹기도 전에 또 그렇게 소리를 지르더군요. 창살을 안에서 마구 흔들면서요.

"글쎄요, 꼭 와 달라고 단단히 부탁은 해놨다니까요."

"한 번 더 열쇠로 열어 봐."

"마찬가지죠 뭘. 문짝이 뭐 생각해 가며 열리고 안 열리고 하겠어요."

"인마,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아. 어서 한 번 더 열어 봐."

나는 어둑한 문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 그대로 꽂힌 열쇠를 비틀어 보았습니다. 열릴 리가 없죠.

"안 열리냐?"

문 안에서 선생님이 소리쳐 물었습니다.

"예, 마찬가집니다."

"한 번 더 해봐!"

"글쎄, 마찬가지라니까요."

그러면서도 나는 또 열쇠를 넣고 비틀며 손잡이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빌어먹을!"

하고 안에서 역정을 내며 선생님은 문을 걷어차는 모양이었어요. 쾅쾅 요란하게 문짝이 울리더군요. 나는 다시 앞 창문께로 돌아 나갔습니다.

"제기랑! 이거 어디……."

선생님은 화실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사방으로 난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열어젖히더군요. 전등도 켜고요.

"쇠창살은 또 뭣 때문에 이렇게 창문마다에 다 쳤어. 빌어먹을! 이거야 답답해서 견디겠나, 어디!"

난 밖에서 물끄러미 그런 선생님을 ― 나를 한 번 부를 때마다 점점 난폭해지는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죠. 뭐가 어째서 그렇게도 답답해하시는지 도통 알 수 없더군요. 모든 시설이 안에 다 있고, 사방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 말입니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여느 날처럼 그림이나 그리시지 않구요."

난 그런 선생님이 참 딱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나를 한 번 힐끔 내다보시더니 무슨 말을 할 듯하다 말고 화실 한복판에 있는 걸상으로 가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곤 곰방대에 또 담배를 담으며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보았어요. 꼭 어디 빠져나갈 틈새라도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틈이 있을 리 없죠. 문은 그 모양으로 고장 났고, 사방에 창문은 있었지만 그 창문들에는 단단히 쇠창살이 쳐져 있었으니까요. 선생님은 한참이나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더군요.

"선생님 저녁은 드셨어요?"

나는 창문 밖에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또 한 번 힐끔 날 쳐다보았습니다. 아무 대꾸도 안 했어요.

"아 그거 왜 자꾸만 문 생각만 하시고 그러셔요?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저 편안히 계시지 않구. 그러면 이제 목수가 와서 고칠 텐데 참."

"……."

선생님은 또 힐끔 날 쳐다보았어요. 사실 그렇거든요. 보통날 선생님은 별로 문 밖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문이 고장이 나니까 그날따라 공연히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꼭 동물원 철창 안에 갇힌 호랑이처럼 불안해하더란 말입니다. 참 묘한 성격이죠.

나는 그런 선생님이 우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해서 슬그머니 창가에서 돌아섰죠. 그랬더니 와장창 무엇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군요. 난 깜짝 놀라서 다시 창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뭔지 아세요? 걸상이 창문 쇠창살에 턱 하니 걸려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일어서며 깔고 앉았던 걸상을 냅다 던진 거죠. 난 어리둥절했죠.

"야 인마! 가면 어떡해! 어서 목수 못 불러와!"

선생님은 창문으로 달려와 쇠창살을 두 손으로 꽉 쥐고 마구 흔들어 대며 소리소리 지르지 뭡니까. 그건 언제나 인자하시던 그 선생님이 아니었습니다. 무서웠어요. 난 전엔 그런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본 일이 없었거든요. 아마 창에 쇠창살이 없었더라면 뛰어넘어 나와서 날 박살을 냈을 겁니다. 정말 겁났어요. 이마엔 핏줄이 서고 입은 꽉 다물고. 선생님은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두 손으로 그 긴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더군요.

"야! 빨리 문 열어!"

갑자기 선생님이 미친 것이나 아닌가 했다니까요.

"예, 목수 아저씨한테 또 갔다 올게요, 선생님!"

나는 겁이 나서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읍내로 달렸습니다. 그땐 벌써 밤이 꽤 깊었죠. 캄캄한 길을 나는 거의 단숨에 읍내에까지 달렸어요. 그런데 뭡니까. 목수 아저씨는 잔뜩 술에 취해서 자고 있지 뭡니까.

"아저씨, 빨리 좀 일어나세요. 문을 좀 열어 주어야 해요."

"음, 문? ……문 열면 되지 뭘 그래."

목수 아저씨는 눈도 안 뜨고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아저씨, 좀 일어나요. 우리 선생님 지금 잔뜩 화났단 말예요!"

"화가 나? ……왜 화가 나……."

목수 아저씨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취해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이죠.

"문이 고장이 나서 안 열린단 말예요!’

"문이……, 고장이 났다!"

"예, 그래요."

"인마, 문이 무슨 고장이 나고 말고가 있어……, 열면 되지. ……문이란 인마, 열리게 돼 있는 거지, 인마."

목수 아저씨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쓱 몸을 돌려 벽을 향해 돌아누워 버렸어요.

"그게 아냐요. 아저씨가 달아 준 저의 선생님 화실 문 알잖아요."

"에이, 시끄럽다! 걷어차라 걷어차! 그럼 제가 열리지 안 열려! 열리지 않는 문이 어디 있어, 인마."

목수 아저씬 잔뜩 몸을 꼬부리며 좀처럼 깨어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어요.

"총각, 웬만하면 낼 아침 일찍 고치지. 저렇게 취했으니 뭐가 되겠어 어디."

목수네 아주머니가 말했어요.

"글쎄 그런데 그게 안 그렇단 말입니다. 우리 선생님이 지금 미칠 지경이거든요."

"미쳐? 아니 문이 안 열린다고 미칠 거야 뭐 있어?"

"글쎄나 말이죠. 내 생각도 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안 그런 걸 어떡해요."

"왜, 뒷간에라도 가고 싶은가?"

"뒷간엔요! 그런 건 다 안에 있죠."

"그럼 배가 고픈가?"

"허참, 아주머니도. 먹을 건 얼마든지 안에 다 있다구요!"

"그런데 왜 그래. 먹을 것 있구 뒤볼 데 있으면 됐지, 그런데 미치긴 왜 미쳐? 오, 바람이 안 통해 서 숨이 답답한가 보구먼 그래."

"허 참,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바람이 왜 안 통해요. 스무 평 방의 사방이 창문인데!"

"그럼 뭐야,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더구나 지금 밤인데, 열어 놓았던 문도 걸어 잠그고 잘 시간인 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발광이야 그래! 원 참 별난 양반 다 보겠네."

"글쎼 그러니까 딱하죠. 낸들 알아요, 그러니 제발 좀 아저씰 깨워 주세요, 아주머니."

"가만 둬요, 총각. 그런 일이라면 내일 아침에 일찍 깨워 보낼게. 그러니까 총각, 그만 돌아가서 그 선생님께 말하지 그래. 문을 열 게 아니라 단단히 걸어 잠그고 주무시라고.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구 원!"

목수네 아주머니까지 이젠 상대를 안 해 주더군요. 그러니 어떡해요. 난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요. 밤길을 다시 걸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갔죠. 선생님의 짜증이 두려워서 될수록 천천히 걸어서 집에까지 갔어요. 조심조심 화실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앞 창문의 쇠창살을 두 손으로 잔뜩 움켜쥐고 한 발을 창턱에다 올려 디디고 금세라도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 같은 몸짓으로 서 있더군요.

 

"야 인마! 빨리빨리 좀 못 다니냐. 사람이 지금 죽을 지경인데……, 그래 목수는 데리고 왔어?"

"그게, 그……, 취해서 자던걸요."

"뭐라구! 취해서 자! 그래 혼자 왔단 말야?"

선생님은 꽥 소리를 지르며 창살을 마구 흔들어대었습니다. 우적우적 금시 쇠창살이 비틀려 떨어질 것 같았어요.

"암만 흔들어도 안 깨던데요. 낼 아침 일찍 온대요."

"무슨 개소리야! 낼이 아니라 이 밤이 당장 문제란 말이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주먹으로 쇠창살을 두들겨댔어요.

"그러니 선생님, 이 밤은 그냥 주무셔요. 어차피 밤이니까 문을 잠가얄 게 아냐요. 그냥 주무셔요, 선생님."

나는 달래듯이 말했죠. 그랬더니 그 말이 선생님을 더욱 흥분시켰던가 봐요.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네가 뭘 안다고 주절거리냐! 누가 밤인 줄 몰라서 안 자는 줄 아냐!"

선생님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듯 마구 상말로 욕지거리를 퍼붓더군요. 그러나 난 조금도 어떻게 안 생각했어요.

"도끼 가져와!"

"도끼가 어디 있어요, 선생님."

"그럼 무슨 망치라도 가져와!"

"망치는 또 어디 있어요!"

"인마, 그럼 날 이렇게 밤새도록 가둬 두겠단 말야!"

"가두긴요……, 아 이제 주무시면 되지 않아요. 밤도 깊었는데요."

"이 새끼가 누굴 약을 올리나. 응, 너 날 약 올리는 거야! 이 죽일 놈의 새끼가!"

선생님은 점점 더 흥분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마구 욕지거리를 하며 화실 안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마침내 발작을 하더군요. 걸상을 둘러메고 가서 문을 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끄떡도 안 하고 걸상이 부서져 나갔죠. 그러자 이번엔 커다란 액자를 문을 향해 던졌습니다. 역시 산산조각이 났죠.

선생님은 이제 정말 자기 정신이 아니었어요. 뭐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집어서 문에다 던졌습니다. 물통, 그림붓, 이젤, 캔버스. 나는 창 밖에서 정말 겁이 났습니다. 도대체 선생님이 왜 그렇게 발광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저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한바탕 던지던 선생님이 이제 던질 것도 없었던지 제풀에 축 어깨를 떨구며 화실 마룻바닥 한복판에 가 턱 하니 가부좌를 틀고 주저앉더군요. 숨이 차서 가슴을 들먹거리면서요, 창문 밖의 나를 노려보겠죠.

"나쁜 새끼! 네가 문을 망가뜨렸지."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왜……, 전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럼 누가 그랬단 말야!"

"글쎄 누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전 정말 모릅니다."

"가라, 나쁜 새끼!"

"아닙니다, 정말!"

"안 갈 테야!"

선생님은 앉은 채 마룻바닥에서 무엇인가 더듬어 창문 밖의 나를 향해 냅다 던졌습니다. 그림 그리는 기름통이었어요. 빗맞긴 했지만 난 얼굴에 기름을 함빡 뒤집어썼죠.

"빨리 꺼져!"

선생님은 또다시 무엇인가 던질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난 재빨리 도망쳤죠. 내 방으로요. 정말입니다. 그리고 자 버렸어요. 선생님은 차라리 혼자 가만히 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화실 안은 아무 불편도 없거든요.

그랬다가 다음날 아침에 조심조심 창 밖으로 가서 안을 살펴보았더니 선생님은 화실 한편 벽에 붙여 놓은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지 않겠어요. 참 어린애 같은 분예요. 나는 그 길로 읍내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이 잠들어 있을 때 아침 일찍 목수 아저씨를 불러다가 문을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읍내길 중간쯤에서 목수 아저씰 만났어요.

"엊저녁엔 내가 취했어. 그래 이렇게 일찍 오는 길이지."

목수 아저씨는 미안해하더군요. 그래 우린 화실로 돌아왔죠. 선생님은 아직 그대로 엎드려 잠들어 있었습니다. 목수 아저씨는 연장을 내려놓고 문손잡이를 몇 번 돌려보더군요. 열릴 리가 있나요. 결국 끌을 가지고 문설주를 도려냈죠. 그렇게 만 하루 만에 문이 열렸어요. 아닌 게 아니라 밖에 있던 나까지도 숨통이 확 틔는 것 같데요.

그거 참 묘하죠. 뭐 별 답답한 것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막상 문이 활짝 열리니까 정말 가슴이 다 시원하던데요. 난 확 열어 젖혀진 문으로 단번에 몰려 들어가는 바람에 빨려 들어가기나 하듯이 화실 안으로 달려들어갔어요. 의자다 액자다 캔버스 따위가 마구 흐트러진 위를 넘어서요.

"선생님! 선생님, 문이 열렸어요!"

소리 질렀죠. 그래도 선생님은 침대에 엎드린 채 꿈쩍도 안 하더군요.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었어요.

"선생님 문이 열렸다니까요! 어서 밖에 나가 보셔요."

나는 침대 곁으로 가서 엎드린 선생님을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죽어서 몸이 굳어 있더란 말이지?"

수사관이 느릿한 몸짓으로 걸상 등받이에서 등을 펴며 책상 위의 조서를 집어 올려 폈다.

"정말입니다. 목수 아저씨도 다 보았습니다!"

만덕은 안타까운 눈으로 수사관을 쳐다보았다.

"물론 목수 아저씨도 보았지. 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를 불러갔으니까. 그러나 목수 아저씨가 본 건 죽은 시체였지 그가 죽는 광경은 아니었지 않아!"

"형사 아저씨! 제 말을 믿어 주십쇼. 정말입니다. 지금 이야기한 대로 모두 사실입니다. 억울합니다. 제가 왜 우리 선생님의 목을 누릅니까. 또 그리구, 목수 아저씨도 잘 압니다. 우리가 갔을 때까지도 문은 그대로 고장 나 잠겨 있었거든요. 그래 그걸 뜯고야 들어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야 그랬지. 그런데 너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단 말야. 안 그래?"

수사관은 열쇠를 집어 들어 방울을 딸랑딸랑 흔들어 보였다.

"허지만 아저씨! 문은 고장이었습니다요! 그걸 목수 아저씨가 뜯고야 들어갔다니까요!"

"거짓말 마!"

수사관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며 고함을 질렀다. 만덕은 수사관을 노려보는 채 무릎 위에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인마! 그럼 네 말대로 20평 화실에 사방의 창문이 모두 활짝 열렸는데 그 속에서 혼자 숨이 막혀 죽었단 말야!"

"글쎄, 그거야……."

"거짓말도 씨가 먹어야지……! 김 순경, 이 자식 끌어다 수감해!"

옆방에서 순경이 들어왔다. 만덕의 죽지를 붙들어 끌고 나갔다. 만덕은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걸었다. 수사관은 거기 조서 밑의 의사의 검안서를 슬쩍 들춰 보았다.

'질식사'

“돌팔이 같은……, 사방의 창문이 활짝 열린 방 안에서 질식해 죽어!”

수사관은 콧방귀를 뀌며 걸상에서 일어나 두 팔을 활짝 쳐들고 기지개를 켰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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