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의 아름다운 시 모음
창문
-정호승
창문은 닫으면 창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은 닫으면 문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이 창이 되기 위해서는
창과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창문이
닫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다
지금까지는
창문을 꼭 닫아야만 밤이 오는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창문을 열었기 때문에
밤하늘에 별이 빛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제 창문을 연다
당신을 향해 창문을 열고 별을 바라본다
창문을 열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끝끝내
-정호승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차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대 처음과 같이 아름다울 줄을
그대 처음과 같이 영원할 줄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순결하게 무덤가에 무더기로 핀
흰 싸리 꽃만 꺾어 바쳤습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눈물도 지나치면 눈물이 아닌 것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꽃이 시드는 동안
- 정호승
꽃이 시드는 동안
밥만 먹었어요
가뿐 숨을 몰아쉬며
꽃이 시드는 동안
돈만 벌었어요
번 돈을 가지고 은행으로 가서
그치지 않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오늘의 사랑을
내일의 사랑으로 미루었어요
꽃이 시든 까닭을
문책하지는 마세요
이제 뼈만 남은 꽃이
곧 돌아가시겠지요
꽃이 돌아가시고
겨우내 내가 우는 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당신만은 부디
봄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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