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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글/좋은글 감동글

[좋은글] 안도현 ‘삶이란 무엇인가?’

by 늘해나 202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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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가?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때리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 번 더 힘을 주는 것,

 

읽어도 읽어도

읽어야 할 책이 쌓이는 것.

 

오래 전에 받은 편지의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궁금해서

우편함을 열어 보는 것.

 

 

 

 

​무심코 손에 들고 온

섬진강 작은 돌멩이 하나한테

용서를 빌며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살짝 가져다 놓는 것,

 

온 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것,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향기가 없으나

사과를 칼로 깎을 때에 비로소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텃밭에 심어 놓은 마늘은

매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도마에 놓고 다질 때 마침내

그 매운 냄새를 퍼뜨리고야 마는 것처럼,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는 것.

 

 

 

 

꼬리 한 쪽을 떼어 주고도

나뒹굴지 않는 도마뱀과

집게발을 잃고도 울지 않고

제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바닷게를 보며

언젠가 돋아날 희망의 새 살을 떠올리는 것,

 

지푸라기에 닿았다 하면

금새 물처럼 흐물흐물 해지는 해삼을 보며,

나는 누구에게 지푸라기였고 해삼이었는지

반성해 보는 것,

 

넥타이 하나 제대로 맬 줄 몰라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풀었다가 다시 매면서

아내에게 수없이 눈총을 받으면서도

넥타이를 맬 때마다 번번이 쩔쩔 매는 것,

 

식당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도

음식을 날라주는 아주머니한테

택시비 하시라고 오천 원을 줘야 할지,

만 원을 줘야 할지 망설이다가

한 번도 은근하고 멋있게 주지 못해

그 식당에 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술값 계산을 하고 나서도

소주 한 병 값을 더 내지 않았나 싶어

이리저리 머리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것,

 

평생 시내버스만 타던 사람은

택시 기본요금이 얼만지 몰라

택시 한 번 타기가 머뭇거려지고,

 

평생 택시만 타던 사람은

시내버스 요금이 얼만지 몰라서

시내버스 한 번 타기가 머뭇거려 지는 것,

 

 

 

 

날마다 물을 주고 보살피며 들여다보던

나무가 꽃을 화들짝 피워 올렸을 때,

마치 내가 꽃을 피운 것처럼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초등학교 앞을 지나갈 때 운동장에서

체육복을 입고 정구공처럼 통통 튀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보며 가슴이 통통 튀는 것

 

물구나무를 서야

바로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 놓았을 때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것,

 

내가 물 한 바가지를 쓰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그 한 바가지의 물을 쓰지 못하게

됨을 아는 것,

 

여름날 저녁에 온 식구가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 뒤에

첫 눈이 오는 겨울 저녁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사는 것,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어지고 늘 머물고 싶어지는 것,

 

 

 

 

단칸방에 살다가, 12평 아파트에 살다가,

24평에 살다가, 32평에 살다가,

39평에 살다가, 45평에 살다가,

51평에 살다가, 63평에 살다가,

82평에 살다가…,

문득 단칸방을 그리워 하다가,

결국엔 한 평도 채 안 되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눕는 것,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도 물어도 알 수 없어서

자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되는 것.

 

 

- 안도현 <삶의 비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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