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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글/시 한편의 여유

[인생시] 열쇠를 잃어버리다

by 늘해나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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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잃어버리다

 

열쇠를 잃어버린 뒤에야

문도 벽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지금 겨울비 뿌리고

차가운 바람 부는 저녁녘

그러나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잠자리 때문도 아니었다

냉장고에 넣어 둔 맛진 음식 때문도

장롱 깊숙이 숨겨둔 패물 때문도 아니었다

동료들과의 잦을 말다툼도

아내와의 냉전도

무너뜨려야 할 벽이었다

열쇠가 필요했다

열쇠 수리공을 부르기로 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열쇠를 가지고 있을까

그는 또 얼마나 많은 벽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열쇠 수리공은 너무 쉽게 문을 열었다

벽은 나의 밥이지요

세상 어디에도 벽이 있고

모든 벽이 더욱 튼튼해질수록

나의 희망도 커져만 가죠

벽이 밥이라니, 희망이라니?

마음이 곧 열쇠구나!

하루하루 희망을 객사시키며

암흑 같은 방 안으로만 잦아들던 나는

새로 만든 열쇠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 이승협 시인

 

 

 

열쇠

 

세상의 문이 나를 향해

다 열려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열어보면 닫혀 있는 문이 참 많다

 

방문과 대문만 그런 게 아니다

자주 만나면서도 외면하며

지나가는 얼굴들

소리 없이 내 이름을 밀어내는

이데올로기들

편견으로 가득한 완고한

집들이 그러하다

 

등 뒤에다 야유와 멸시의 언어를

소금처럼 뿌리는 이도 있다

그들의 문을 열 만능 열쇠가

내게는 없다

 

이 세상 많은 이들처럼 나도

그저 평범한 몇 개의 열쇠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드리는 일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사는 동안 내내 열리지 않던 문이

나를 향해 열리는 날처럼

기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문이 천천히 열리는 그 작은 삐걱임과

빛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소리

희망의 소리도 그와 같으리니

 

-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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