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줄거리
원래 광문은 종로 네거리를 다니며 구걸하는 거지였는데, 여러 거지 아이들이 그를 두목으로 삼아 소굴을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어느 겨울밤 거지 아이 하나가 병이 들어 앓다가 갑자기 죽는다. 그러자 거지 아이들은 광문이 죽인 것으로 의심하여 쫓아낸다.
광문은 마을 안의 어떤 집에 숨으려 하다가 주인에게 발각되어 도둑으로 몰렸으나, 그의 말이 너무나 순박하여 풀려난다. 그는 주인에게 거적 하나를 얻어 수표교에다 다른 거지들이 버린 거지 아이의 시체를 거적으로 잘 싸서 서문 밖에 장사를 지내 준다.
이 모습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던 주인이 광문의 덕행을 가상히 여겨 그를 약방에 추천하여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런데 약방에서 돈이 없어지는 사건이 벌어지자, 광문이 또 다시 의심받게 된다.
다행히 며칠 뒤 약방 주인의 처조카가 가져간 사실이 드러나 광문의 무고함이 밝혀진다. 약방 주인은 광문에게 크게 사과한 뒤, 자기 친구들에게 널리 광문의 사람됨을 퍼뜨려 장안 사람 모두가 광문과 그 주인을 칭송하게 된다.
광문은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보증을 서 줄 정도로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않았다. 자신의 추한 몰골을 생각하고 아예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광문은, 어느 날 장안에서 이름난 기생 운심을 만나게 된다.
광문이 자신의 남루한 복장과 추한 얼굴을 숨기지 않고 많은 귀인들 앞에서 콧노래로 장단을 맞추자, 콧대 높은 운심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위해 춤을 추었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광문과 친구가 되기를 청한다.

❏ 작품해설
<광문자전>은 조선 후기의 실학파 문인 연암 박지원의 한문 단편으로, 실제로 존재했던 ‘광문’ 또는 ‘달문’이라는 인물에 대한 일화들을 치밀하게 엮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작품 내용은 ① 거지두목이었다가 쫓겨난 사건, ② 약방에 점원으로 있을 때의 돈 분실 사건, ③ 남을 위해 자신의 신용으로 보증을 서준 사건, ④ 웃음으로 싸움을 중재한 일과 그의 재주, ⑤ 결혼과 치산에 대한 견해, ⑥ 기생 운심의 기방에서 있었던 사건 등을 담고 있다.
박지원은 주인공 광문을 인정 있고 정직하며 소탈한 근대적 인간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못생긴 거지이지만 착하고 신의가 있으며 남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해학과 기지로써 사람 사이의 분쟁을 무마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재물에 대한 욕심은 없다. 특히 남녀가 평등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근대적 인간이다.
이러한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박지원은 참다운 인간성을 잃고 권모술수가 판을 치던 당시의 세태(양반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광문자전> 전문
- 연암 박지원
‘광문(廣文)’이란 사람은 거지였다. 일찍이 종로 거리에 있는 시전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 먹었는데, 나중에 여러 거지아이들이 그를 두목으로 추대하여 그들의 소굴을 지키게 했다.
하루는 날씨가 춥고 진눈깨비가 내리는데 모든 거지들이 구걸을 나가고 한 아이만이 병이 나서 따라 나가지 못했다. 잠시 후 거지아이는 추위로 아픔이 심해지니, 그 신음소리가 매우 비참했다.
광문은 그것을 불쌍히 여기고 구걸을 나가 음식을 얻어왔다. 그가 병든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려 했으나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윽고 여러 거지아이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광문이 그 아이를 죽이지 않았나 의심해서 광문을 뭇매질하고 내쫓았다.
광문은 밤에 엉금엉금 기어서 마을 안의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의 개가 놀라서 짖는 바람에 집주인이 광문을 잡아서 묶었다. 광문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를 해치려는 자들을 피해서 온 것이지, 감히 도둑질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영감님께서 믿지 않으신다면 내일 아침에 시전에 나가 밝혀 드리겠습니다.”
그 말이 매우 순박해서 집주인은 마음속으로 광문이 도적이 아님을 깨닫고 새벽녘에 풀어 주었다. 광문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거적때기를 하나 얻어서 집을 떠났다.
하지만 집주인은 끝내 이상히 여겨 그 뒤를 따라갔다. 그는 여러 거지들이 시체 하나를 끌고 가 수표교 다리 아래로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광문은 다리 아래 숨어 있다가 시체를 거적때기에 싸 짊어지고 몰래 떠나더니 서쪽 교외의 무덤 사이에 그것을 묻고 울면서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이때 주인이 광문을 붙들어 사연을 물으니, 광문은 전의 일부터 어젯밤의 상황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주인은 광문이 의로운 자라고 여겨 그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히고 그를 후하게 대우해 주었다. 그리고 그를 약방을 하는 부자에게 추천해서 고용살이를 하게끔 해주었다.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약방 부자가 문 밖으로 나가다가 자꾸만 돌아보며 다시 방에 들어와서 자물쇠를 살피고 문을 나서는데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매우 놀란 표정으로 광문을 노려보더니 무언가 말하려다가 안색이 변해서 그만두는 것이었다. 광문은 진실로 아는 바가 없는지라 매일 묵묵히 지낼 뿐 감히 이유를 묻고 떠나지를 못했다.
그런지 며칠 후에 부자의 처조카가 돈을 부자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지난번에 돈이 필요해서 아저씨께 빌리러 왔는데, 마침 안 계시기에 방에 들어가서 가지고 갔습니다. 아마 아저씨께서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광문에게 매우 부끄러워하며 사과했다.
“내가 소인일세. 장자(長者 : 점잖은 사람. 대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니, 내 장차 무슨 면목으로 자네를 대한단 말인가.”
그러고는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부자와 큰 상인들에게도 두루두루 ‘광문은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여러 종실(임금의 친척)의 손님들과 공경(고관의 총칭)의 문하(門下)들에게도 광문을 칭찬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래서 공경의 문하와 종실의 손님들이 모두 이것을 이야깃거리로 삼아서 침석에서조차 이 이야기를 했다.
몇 달 동안 사대부들은 옛 성현들의 이야기를 듣듯 광문에 대하여 듣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때 한양성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광문을 전에 후히 대접했던 어느 집 주인이야말로 현인이야. 능히 사람을 알아보았으니 말이야.”
또 덧붙이기를, “약방의 부자야말로 점잖은 사람이야.”라고도 했다.
이때 돈놀이꾼이 많았는데 그들은 수식품(머리 장식에 쓰는 물건)이나 구슬, 비취 또는 의건(衣件), 기물(器物)과 궁실(宮室)의 땅과 노비문서 등의 밑천을 계산해서 저당을 잡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광문은 누가 보증인이 되어 달라고 하면 저당물을 보지도 않고 천 냥이라도 보증을 서 주었다.
광문의 인물을 보면 생김새가 매우 추하고 그 말투는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며, 그 입은 특히 넓어서 두 주먹이 들어갈 정도였다. 그는 또 만석 놀이를 좋아하고 철괴춤을 잘 추었다.
당시 나라 안의 아이들이 서로 욕할 때 ‘네 형은 달문이다’라고 했는데 달문은 광문의 다른 이름이었다.
광문은 다니다가 다투는 사람을 만나면 자기도 옷을 벗고 싸움에 가담해서 무어라 중얼거리며 땅에 줄을 그으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척했다. 그러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웃어 버리니, 싸우던 사람들도 웃고는 화해하고 가 버렸다.
광문은 나이가 사십이 넘도록 머리를 땋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부인을 얻으라고 권하면 사양하며 말하기를,
“무릇 아름다운 여인이란 모든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일 테니, 나같이 누추한 사람은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겠습니까?”
라고 했다. 또 집을 마련하라고 하면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모형제나 처자식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집을 마련한단 말입니까? 또한 나는 아침에 노래를 부르며 시장에 들어갔다가 저녁이 되면 어느 부귀한 집의 처마 밑에서 자니, 한양성에는 팔만 호(戶)가 있어 내가 매일 거처를 바꾼다 해도 수명이 끝날 때까지 다 돌아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한양의 이름 있는 기생들은 모두 얌전하며 아름다웠으나, 그들은 광문이 소리를 함께 맞춰주지 않으면 한푼 어치의 가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우림아(궁궐 호위와 의장의 임무를 맡은 근위병)와 각 전(殿)의 별감들과 부마도위(임금의 사위) 등이 시종을 거느리고 소매를 나란히 하여 이름난 기녀인 운심이를 찾았다.
마루 위에 술을 차리고 북과 거문고를 연주하며 운심이의 춤을 감상하려고 했다. 하지만 운심은 굳이 시간을 끌며 춤을 추려 하지 않았다.
광문이 밤에 이곳에 와서 마루 아래를 배회하다가 대뜸 들어와서 상석에 털썩 앉았다. 광문은 비록 남루한 옷을 입고 있어 행동거지가 전에 없는 것이었으나 그 뜻에는 기개가 있었다.
그 모습은 매우 해괴하여 눈꼬리가 짓물러 눈곱이 끼여 있고 취한 척 트림을 해대며 양의 털 같은 머리에다 뒤통수에 상투를 틀고 있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서로 눈짓을 하며 광문을 쫓아내려고 했으나, 광문은 한층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치며 가락을 뽑아 콧노래로 고저(高低)를 맞추었다.
그러자 운심이가 즉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광문을 위하여 칼춤을 추니, 사람들은 크게 즐거워했다. 그들은 다시 광문과 벗이 되기를 청하고는 떠나갔다. (끝)
<허생전> 줄거리와 해설, 전문
❏ 줄거리허생은 남산 밑 묵적골에 사는 가난한 선비로 글 읽기만 좋아했다. 10년 계획으로 책 읽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아내의 질책을 듣고 장안의 부자인 변씨를
bookhappy.tistory.com
<호질> 등장인물과 줄거리, 해설과 전문
❏ 등장인물• 북곽 선생 학식이 높으나 벼슬을 싫어하는 체하는 선비. 남몰래 젊은 과부 동리자와 밀회하다가 과부의 다섯 아들에게 발견되어 도망치다 똥통에 빠지고, 또 범을 만나 갖은 아첨
bookhappy.tistory.com
<이춘풍전> 줄거리와 전문
고전소설 줄거리와 전문 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조선 숙종 시절을 배경으로 이춘풍이 유흥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기생의 집에서 하인 노릇까지 하게 되었으나, 아내의 노력으로
bookhappy.tistory.com
'독서 레시피 > 우리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양반전> 등장인물과 줄거리, 해설과 전문 (0) | 2026.08.24 |
|---|---|
| <허생전> 줄거리와 해설, 전문 (0) | 2026.08.23 |
| <호질> 등장인물과 줄거리, 해설과 전문 (0) | 2026.08.22 |
|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 조선의 마르코폴로 (0) | 2025.12.01 |
| <숙향전> 전문 (0) | 2025.10.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