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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문화부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5

by 늘해나 202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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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문화부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5

 

 

1. H마트에서 울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책 앞표지 이미지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문학동네 펴냄

 

미셸 자우너의 책 <H마트에서 울다>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Ever since my mom died, I cry in H Mart).”

 

한국인 어머니,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자우너는 2018년 ‘뉴요커’에 게재한 이 에세이로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H마트는 한국 식재료와 식품을 파는 미국 슈퍼마켓 체인이다.

 

자우너는 이 에세이를 한 권의 책으로 발전시켰고 지난해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 뉴욕타임스, 아마존이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2. 고맙습니다

뒤늦게 열어본 ‘아버지’라는 블랙박스

 

책 앞표지 이미지
<고맙습니다> 올리버 색스 지음, 알마 펴냄

 

아버지의 폐(허파)를 처음 본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카톡! 삼남매 단톡방에 CT 사진이 올라왔다. 건강검진 흉부 X선에서 문제가 발견돼 대학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은 터였다. 폐의 나머지와는 색깔이 완연히 다른 동그라미가 또렷하게 보였다.

 

“500원짜리 동전만 하다”고 어머니는 표현했다. 즉물적으로 그랬다. 쌀도 콩도 아니고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암 덩어리였다. 나는 그날 집에서 스마트폰을 붙잡고 한참을 얼어붙어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담배를 많이 피웠다. 제약회사 영업직 등 거의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산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돈이 가장 무서운 시대를 살았다. 삼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내려면 부지런해야 했다.

 

아버지가 허공으로 내뿜던 담배 연기는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 있는 부산물이겠거니 이제는 생각한다. 아버지는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직 바둑을 둘 때만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흘끔 엿볼 수 있었다. 암세포가 500원짜리로 자라는 동안 자식은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기관지에도 전이돼 수술은 어렵다고 했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약물) 치료가 시작됐다. 여느 암 환자처럼 아버지는 식욕을 잃었고 머리카락을 잃었다. 가래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그래도 의지는 굳셌다. 형이 “아버지가 의사 앞에서 ‘지금 아무 문제 없고 정상’이라고 말하는 게 문제야. 의사가 웃었어”라고 전할 정도였다. “코미디 프로와 음식 프로를 보시는 게 좋대”라고 대꾸했을 뿐, 나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무렵 올리버 색스(1933~2015)가 쓴 <고맙습니다>를 다시 읽었다.

 

“간밤에 수은(Hg)에 대한 꿈을 꾸었지. 수은은 원자번호 80. 해몽하자면 이번 화요일에 내가 여든 살이 된다는 암시였네”로 시작되는 에세이다.

 

색스는 “가끔은 인생이 이제야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내 사실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깨달음이 뒤따른다”고 썼다. 작가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문장들은 감사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지난해 가을 80세 생신을 맞았다. 항암 치료 한 사이클(6~7주)이 끝나자 폐암은 아주 작아져 있었다. 내게 아버지는 사고가 난 뒤에야 열어보는 블랙박스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는 어릴 적 내가 알던 과묵한 사람이 아니었다. 폐암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인생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긴 여정을 잘 달려온 삶의 승리자였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1년 전 CT 사진을 보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봄의 들판이 푸르게 일어서고 있었다. /박돈규 기자

 

 

3. 엄마, 사라지지 마

신처럼 전지전능하던 당신이 작아지네

 

책 앞표지 이미지
<엄마,&nbsp; 사라지지 마> 한설희 사진집, 북노마드 펴냄

 

“네 걸음이 너무 빠르구나.”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다. 내가 결코 빨리 걷는 편이 아닌데…. 뒤를 돌아보니 엄마는 발을 끌며 걷고 있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계단을 내려갈 때면 난간에 의지해야만 했다. 놀랐다. 속이 상했다. 이윽고 두려워졌다.

 

2016년 가을, 뉴욕에서였다. 회사 연수 중이던 나를 보러 온 엄마는 보름간 머물렀다. 대학에 입학하며 집을 떠났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낸 건 성인이 된 후 처음이었다.

 

엄마는 늑장을 부리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항상 성큼성큼 앞서가며 빨리 오라 재촉했다. 키는 내가 더 컸지만 내 마음속 엄마는 언제나 나보다 컸다.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의 엄마가 쇠약해지고 있다는 걸. 그렇지만 엄마는 내가 모르는 새 서서히 늙어가고 있었다.

 

엄마와 핼러윈 퍼레이드를 보러 갔다. 말 타고 등장한 뉴욕 경찰이 신기하다며 엄마는 즐거워했다.

 

“엄마, 다리 안 아파? 그만 들어갈까?”

 

오래 서 있는 엄마가 걱정돼 거듭 물었지만 엄마는 시큰대는 무릎을 쓰다듬으면서도 어린아이처럼 도리질을 쳤다.

 

“계획 짜놓은 거 절대 취소하지 말고 다 하자. 내 인생 마지막 해외여행일지도 모르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웃어넘겼지만 부모님의 시계는 내 예상보다 빠르게 간다.

 

10월치고는 바람이 매서웠다. 뉴욕에 있는 내내 엄마는 가지고 온 옷 중 그나마 따뜻한 검정 스웨터 차림이었다. 안 그래도 야윈 엄마가 까만 옷 속에서 더욱 수척해 보였다. 이러다 바스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69세 딸 한설희씨가 93세 엄마를 사진 찍어 기록한 책 <엄마, 사라지지 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엄마의 신체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들은 엄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 그것이 바로 늙는다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이라고. 엄마의 현재는 나의 미래이기도 하다고.”

 

나는 비로소 그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상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는 것만 같다. 신처럼 전지전능한 것 같던 그들이 어느 순간 내게 의지하는 존재가 된다. 자그마하게 줄어든다. 얼음이 녹듯 사라져간다.

 

엄마가 귀국하던 날, JFK공항에 배웅을 나갔다. 까만 스웨터를 입은 엄마의 뒷모습이 보안검색대를 지나치면서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소실점이 되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곽아람 기자

 

 

4.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엄마의 맛으로 엄마를 기억하리

 

책 앞표지 이미지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호원숙 지음, 세미콜론 펴냄

 

옷 브랜드는 안 따져도, 식료품 상표는 따지는 집에서 자랐다.

 

그래서 <H마트에서 울다>를 쓴 미셸 자우너가 “엄마를 잃자 마트에 가도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이 없다”고 한 대목에서 당혹감을 느꼈다. 무슨 상표 김을 먹었는지 모른다니. 나는 이토록 잘 아는데.

 

구운 김, 커피 원두, 본가에서 쓰는 일회용 랩, 쿠킹포일, 커피 원두 분쇄기 제품이 뭔지 나는 잘 안다. 엄마표 쇠고기 로스트비프, 카레 가루를 입혀 구워내는 닭 날개 재료도. 이 음식 재료와 주방용품은 모두 창고형 할인 매장 코스트코에서 왔다.

 

중학교 때 짧게 미국에서 살았던 영향이다. 당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던 코스트코를 H마트만큼이나 자주 찾았다. 기러기 아빠를 제외한 세 가족은 함께 장을 봤다.

 

계산을 마치고 나면 엄마는 싸구려 코스트코 커피를 마셨고, 나와 남동생은 무제한 리필 탄산음료가 딸려오는 핫도그를 먹었다. ‘미제’ 맛을 알아버린 탓일까. 한국에 돌아와서도 코스트코는 가족이 함께 장을 보러 가는 곳이 됐다.

 

결혼해 독립한 이후 집 냉장고와 찬장에 코스트코 물건을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집에서 나는 로스트비프와 닭 날개 구이를 엄마 맛으로 재현해낸다. ‘미셸 자우너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이 쓴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읽기 전까진 말이다. 호원숙은 부엌에 있던 엄마 박완서를 그리며 엄마의 조리법을 책에 실었다.

 

오이소박이, 준칫국, 민어탕, 빈대떡…. 묘하게 박완서와 엄마의 조리법은 닮아있었다. 그제야 내가 아는 엄마의 요리법은 고작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이며, 김 상표 따위 안다고 젠체할 때가 아님을 알았다.

 

“엄마가 구운 김도 맛있지만 역시 돌아가신 외할머니 김이 최고”라고 천진하게 말했던 과거의 나도 떠올랐다. 그 말이 ‘엄마는 외할머니의 맛을 못 낸다’는 핀잔으로 들려 엄마의 마음을 할퀴지는 않았을까.

 

코로나 한가운데서 쌍둥이 아빠가 됐다. 대형마트 방문은 언감생심인 처지다. 엄마는 코스트코에서 혼자 장을 봐선 주말에 한아름 안겨준다. 오늘도 엄마가 보낸 카톡이 도착했다.

 

“코스트코 가는데 뭐 필요한 거?” 불시에 당한 기습. 대를 이어 애정하는 엄마 모교 앞 주먹밥집의 매운 겨자 소스를 과하게 찍어먹었을 때처럼 코가 찡했고 눈물이 났다.

 

호원숙은 “음식을 기억하며, 음식을 만들며, 그 음식을 먹으며, 생명을 이어간다”고 적었다. 음식을 기억함은 엄마를 기억하는 것이다. 엄마가 떠나면 코스트코에선 울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양지호 기자

 

 

5. 이완의 자세

찜질방 온탕에서 모정을 깨닫다

 

책 앞표지 이미지
<이완의 자세> 김유담 지음, 창비 펴냄

 

“나는 종종 공중목욕탕에서 우는 여자들을 본다.”

 

김유담 소설 <이완의 자세>의 첫 문장이다. 코로나 사태 전 난 자주 저 문장 속 여자가 됐었다.

 

책 속 화자는 딸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처럼 여기는 세신사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게 때론 버거웠지만 인생의 힘든 순간 엄마의 말에 위로를 얻고, 온탕에 몸을 담그며 엄마를 이해한다.

 

나 역시 엄마를 떠올리며 온탕에 몸을 담갔고, 그 시절 엄마가 이해됐으며, 동시에 그리워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경우, 정확히는 ‘찜질방 온탕’이었지만.

 

내가 중학생 때 엄마의 유일한 취미는 ‘찜질방 가기’였다. 그 무렵 난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 주말에만 집에 돌아갔다. 그때마다 엄마는 찜질방에 가자 했고, 뜨거운 걸 질색하던 난 펄쩍 뛰었다.

 

도대체 멀쩡한 살갗을 왜 지져. 그게 진짜 시원해? 황토방, 솔잎방, 대체 ‘고문방’이 몇 개야. 그곳에 있을 ‘엄마 사단’도 싫었다. 인사해, 이쪽은 ‘XX동 이모’, 저쪽은 ‘XX 철물점 이모’…. 우리집 족보에 갑자기 이모로 오른 그들은 내게 쉴 새 없이 질문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평소 못 읽게 하던 만화책을 찜질방에서만 허락하며 날 유순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매번 모녀의 기괴한 동행이 벌어졌다. 나는 항상 가장 덜 뜨거운 소금방으로 직행해 만화책을 성벽처럼 쌓고 틀어박혔고, 그 사이 엄마는 이름만 봐도 뜨거운 ‘불가마’에서 땀을 뺐다.

 

그래도 막상 가면 찜질방은 썩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만화책 성벽에 둘러싸인 딸의 배꼽시계를 어찌 알았는지 엄마는 늘 적기에 나타나 식당에 가자고 손짓했다. 그곳에선 노릇한 맥반석 계란, 살얼음 뜬 식혜, 따뜻한 미역국이 세계 제일의 별미였다.

 

든든히 배를 채운 뒤엔 마음이 좀 풀어져 엄마를 따라 고문방들에 잠깐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이후 난 가장 미지근한 욕탕을 골라 때를 불렸고, 엄마가 불가마와 냉탕을 바삐 오가는 걸 지켜봤다. 발갛게 달아오른 엄마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 활기차 보였다. 그땐 그런 엄마의 모습을 평생 볼 줄 알았다.

 

이제 일흔을 앞둔 엄마는 기운이 부친다며 더 이상 찜질방에 가지 않는다. 그 좋아하던 불가마가 이젠 엄마의 체력을 갉아먹는다. 홀로 찜질방에 남으니 알게 됐다.

 

온기와 수다가 일상에 지친 삭신에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혼자 키우던 외동딸과 갑작스레 떨어진 엄마가 텅 빈 집에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그때 엄마에게 찜질방은 딸과 온전히 종일을 함께 보낼 유일한 집 밖 장소였다.

 

<H마트에서 울다>의 저자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한국식 찜질방에 몸을 뉘었고, ‘자궁 속’처럼 느껴져 소리 없이 울었다고 썼다. 나 역시 이제는 고문방이 아니게 된 찜질방에 몸을 누이며 종종 운다. 발갛던 엄마의 얼굴이 다시 보고 싶어서. /윤수정 기자

 

* 출처 : 조선일보(30대, 40대의 문화부 기자들이 ‘부모님과 눈물, 그리고 책’을 주제로 자신의 고백을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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