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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의 시모음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자작나무 숲에서
- 안도현
햇빛이
자작나무 잎사귀에 닿아서
열심히 잎사귀를 닦아주고 있네
잎사귀들이 좋아하네
저마다 반들반들 간지러워 하네
한 자작나무가 까르륵거리면
또 한 자작나무가 까르륵
까르륵
햇빛이 등을 밀어주고 있네
자작나무가 자작자작 여럿이
산을 넘고 있네
자작나무 숲이 넓어지고 있네
철길
- 안도현
혼자 가는 길보다는
둘이서 함께 가리
앞서지도 뒤서지도 말고 이렇게
나란히 떠나가리
서로 그리워하는 만큼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있는 우리
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리
사람이 사는 마을에
도착하는 날까지
혼자 가는 길보다는
둘이서 함께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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