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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빌리다
정원이 아름다운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그냥 살던 집 벽을 헐고 창을 내어
풍경을 빌려서 살기로 했다
오래된 시멘트 벽이었다
쇠망치로 벽을 치자 손목과 팔이 저려왔다
한번 더 힘껏 치자 어깨와 가슴까지 저려왔다
쇠망치를 튕겨내는 벽
반항하는 벽 대신에 서까래와 대들보만 울었다
"벽은 안에서 밖으로 치는 것이여!"
지나가던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그런가?
상처 난 벽을 잠깐 쳐다보다가 돌아보는 사이
노인은 자취가 없다
헛것을 본 것인가
동네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노인이라는 생각을 하며
방 안에 들어가 밖으로 벽을 치자
망치 두세방에 벽이 뻥 뚫렸다
하늘이 방 안으로 무너지고 햇살이 쏟아졌다
터진 벽에 창틀을 끼우고 유리를 붙이자
창문으로 감나무와 버즘나무와 잣나무 숲이 선착순으로 들어오고
잣나무숲 뒤로 마을과 멀리 바위를 등에 업은 산맥이 들어왔다
산 중턱에 요란한 절과 반짝이는 교회 첨탑이 옥에 티지만
가끔 빗줄기와 눈발이 발을 쳐서 가려주었다
이 땅에 경치 좋고 인심 좋은 명당이 흔하겠는가
이게 인생 아니겠나
마음이 명당이면 되는 것 아니겠나
창을 낸 후 방 안은 매일매일이
유리 스크린 영화관이다
오늘은 직박구리 두마리가
가지에 매달린 언 감을 쪼아 먹는 모습이 다정하다
러브씬도 은근히 기대해본다
- 공광규 시집 『담장을 허물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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